(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진료 예약도 어려운데 수술까지 7개월은 더 걸린다고 해서 포기했어요.
최근 유방암을 진단받은 A 씨는 가슴이 출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렵게 진료 예약을 했지만 수술이 바로 잡혀도 7개월, 시간으로 치면 5000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A 씨는 그나마 빠르게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위해 전화를 돌리고 있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빅5 등 상급종합병원에서 암 환자가 진료를 보는 데까지 최소 5개월가량이 걸린다. 예약만 5개월가량 밀려있어 수술 대기 기간은 더 늘어나고 환자 피해도 더 커질 전망이다.
고범석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는 "의정 갈등 전에는 진료 후 한 달 안에 수술하는 게 목표였는데 지금은 진료 예약 자체가 5개월 정도 밀려있어 예약해도 7월에 잡힌다"며 "암은 수술이 늦어지면 아무래도 진행될 수밖에 없다. 예후가 안 좋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정부가 매년 '2000명'씩 5년간 총 1만명의 의대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난 이날, 각종 암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A 씨와 같이 진료와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었다. 의정 갈등의 여파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의정갈등이 시작된 지난해 2월 이후 상급병원의 수술 건수는 60~70% 수준으로 줄었다. 2000명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해 의료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1년간 늘어난 업무를 소화해야 했던 의료진들은 끝나지 않는 갈등에 신체적, 정신적 피로가 극에 치달았다고 말한다.
한철 이대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뿐 아니라 사직한 펠로우(전임의)도 많고, 손이 많이 필요한 중증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의료진들의 몸이 망가져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의료계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리는 의료개혁의 목표 자체에는 동의하나 그 과정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의대 증원뿐 아니라 외과, 소아청소년과, 분만 등 저평가된 필수 의료 분야에 수가를 높이는 것은 필요하나 그 방식이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이봉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한양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정부와) 목표는 같으나 과정이 준비성이 없고 과격하다"며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아니라 모든 것을 투명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수가 분류 체계 기반이 잘못돼 있는데 그것을 기반으로 추진하는 것은 출발점이 잘못된 것"이라며 진료·수술 대기와 진료비 인상 등의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이라고 했다.
예컨대 암 환자가 팔이나 다리가 부러져 응급실을 찾을 경우 현재 진료 체계에서는 경증으로 분류돼 수술받을 수 없다. 여러 환자의 다양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료 코드를 파악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협의가 없다는 것이다.

장기화하는 갈등에 환자뿐 아니라 정부와 의료계는 사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다만 정부와 의료계 각각의 입장이 분명해 갈등의 차이를 좁히는 게 관건이다.
윤석열 정부가 주력해 온 의료개혁이 탄핵정국을 맞아 사실상 진전 없이 흘러가는 동안 환자들의 피해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 유일 법정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 김택우 회장은 지난 5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뜻을 내비쳤다.
오는 14일에는 의료계와 정치권이 만나 의대 정원을 조정하는 법적 근거를 논의하는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공청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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