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보복 관세에 대응해 대중국 상호관세율을 125%로 높이고 나머지 국가에 대해선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하며 제2차 미중 무역전쟁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를 두고 서방 언론에서는 미국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과 중국의 눈싸움에서 "중국이 먼저 눈을 깜빡일 것 같지 않다"며 중국의 대미 상품 의존도보다 미국의 대중국 상품 의존도가 더 높기 때문에 관세로 인한 가격 상승이 미국 소비자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가디언은 최근 몇 년간 중국 내수 경제가 어려워지긴 했지만 관세를 놓고 중국이 먼저 양보할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일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에노도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다이애나 초일레바는 "시 주석이 정치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반응은 '받아들이라'는 것뿐"이라며 "이미 강력한 보복 관세로 맞대응해 자국민들을 놀라게 한 만큼 물러서는 모습은 정치적으로 용납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국이 서로에게서 수입하는 품목만 봐도 그렇다. 미국이 중국에서 주로 수입하는 물건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장난감 같은 소비재다. 대표적으로는 아이폰이 있다.
일례로 지난주 로젠블래트 증권은 미국 내 아이폰 가격이 799달러에서 1142달러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는데, 당시 트럼프가 중국에 매긴 상호관세는 34%였다. 상호관세율이 84%에 이어 125%로 다시 높아진 만큼 미국 내 가격은 더 비싸질 것으로 보인다.
초일레바는 "트럼프는 이 같은 가격 상승에서 발생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 중국에만 책임을 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은 대두와 화석연료, 제트 엔진 등 산업 및 제조용 상품이다. 이런 상품의 가격 인상은 소비재에 바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중국 소비자의 체감은 비교적 덜 할 전망이다.
그리고 중국은 이미 이 게임을 해 봤다.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와 1차 무역전쟁을 벌인 중국은 이후 다른 국가와의 무역을 확대하며 대미 의존도를 줄여 왔다.
가디언은 2018년과 2020년 사이 중국이 브라질산 대두 수입량을 2015~2017년의 평균치보다 45% 이상 늘렸다는 점을 짚었다. 같은 기간 미국산 대두 수입은 38% 줄였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산 농산물의 최대 시장이지만 2022년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액(428억 달러)에 비하면 2024년의 수입액은 292억5000만 달러로 줄었다.
다른 카드도 있다. 중국 내 친정부 블로거들은 △펜타닐 통제 협력 중단 △미국 기업의 중국 내 지식재산권 이익 조사 △할리우드 영화의 중국 상영 금지 등을 거론했으며 중국 외교부는 이 같은 조처의 시행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미국을 겨냥한 '풀뿌리 불매운동'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가디언은 2017년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시 중국 소비자들이 롯데에 대한 대규모 불매 운동에 참여했고 그 결과 중국 본토 내 롯데 매장 100여개 가운데 약 절반이 문을 닫은 점을 예로 들었다.
미국 CNN 방송은 세계 최대 경제국인 두 나라 간의 무역이 중단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확산하며 양측 모두 심각한 피해를 볼 것으로 관측했다.
CNN은 "트럼프의 무계획적인 리더십은 원하는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며 트럼프와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미국 소비자를 타격할 중국의 카드에 완전히 대비돼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소규모 기업들이 특히 취약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애플과 같은 거대 기업은 인도 같은 대체 생산기지를 찾을 수 있지만 중국산 부품에 의존하는 미국 기업들은 큰 위험에 처한다.

중국의 자신감은 시진핑의 내수와 자립을 키워드로 한 경제 구조 재편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릴리 맥엘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중국 연구 석좌교수는 CNN 인터뷰에서 "내가 시진핑이라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인 기술적 회복력과 자립성 측면에서 중국은 괜찮으며 관세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위주의 지도자인 시진핑은 트럼프와 달리 중간선거와 같은 지지율 시험대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의 고율 관세에 완전히 면역인 건 아니다. 미국발 관세 전쟁 개시 후 중국과 홍콩 주식시장은 무섭게 하락하고 있다. 가디언은 중국이 내수를 의미 있게 증진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1기 당시 미국은 약 37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도 이에 대응해 미국산 농산물과 자동차, 화학 제품 등에 보복 관세를 매겼다.
두 나라는 여러 차례 협상을 시도하며 2019년 1단계 무역 합의를 체결했다.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과 에너지 등을 더 많이 구매하고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며 환율을 조작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포함됐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발발로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중국은 미국산 상품을 충분히 구매하지 못하게 됐고 인권 문제와 기술 분쟁, 군사적 긴장 등으로 미중 간의 정치적 갈등이 지속되면서 합의는 유명무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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