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경민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30일 휴전 대신 에너지·인프라 30일 공격 중단에만 합의하며 협상 주도권을 가져왔다. 이번 협상으로 러시아는 다시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평가했다.
푸틴과 트럼프는 18일(현지시간) 직접 통화하고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 시설에 대한 공격을 30일 동안 중단하기로 했다. 트럼프가 당초 제시한 30일 전면 휴전보다 훨씬 축소된 수준이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신뢰하며, 미·러 관계 정상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의지가 있다"고 당시 통화를 설명했다.
WP는 이로써 종전을 위한 평화 협정은 지체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봤다.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협상 카드였던 쿠르스크 지역 대부분을 수복하며 우크라이나를 밀어붙이는 중이다.
푸틴과 트럼프의 통화로 러시아는 약소국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강국으로 떠올랐고, 나아가 이는 다른 글로벌 분쟁 해결에 있어서 러시아의 역할을 인정하는 신호탄이 됐다고 WP는 분석했다. 푸틴은 오랫동안 자유세계 질서 전복과 소수 대국의 영향력으로 세계 질서를 개편하는 걸 그려왔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연구원은 중동과 같은 주요 국제 문제에 대해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묵시적으로 수용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 양국을 분리하려는 푸틴의 명백한 승리"라고 강조했다.
실제 우크라이나는 합의사항을 곧바로 알지 못했고, 관련국인 유럽은 아예 협상에서 배제됐다.
푸틴의 최측근이자 3대 대통령을 지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소셜미디어 엑스(X)에 "식당엔 러시아와 미국만 있다. 브뤼셀의 양배추, 영국의 피시 앤 칩스, 파리의 수탉은 가벼운 에피타이저이고 메인 요리는 키이우 스타일 커틀릿"이라며 유럽과 우크라이나 패싱을 떠벌렸다.
전통적인 미국식 외교에서 벗어난 트럼프가 러시아에 힘을 실으며 결론적으로는 서로의 셈법이 맞아떨어졌다. 트럼프는 푸틴과의 통화 이후 폭스뉴스를 통해 미국은 "몇 달 전과 많이 다른 나라"라며 앞으로 러시아·중국과 협력 강화에 의지를 드러냈다.
러시아 정치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은 CNN에 트럼프가 서방 동맹국보다 푸틴과 더 가깝다며 "푸틴과 트럼프는 자유주의 세계화 대신 강대국 세계 질서 모델을 똑같이 수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치 분석가 알렉산드르 필리펜코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이 양국 정상 통화로 "여러모로 정당화됐다"며 "러시아군 철수에 대한 압박이 없다는 건 트럼프가 러시아를 필요한 파트너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의 목표는 러시아와 깊은 동맹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추출하는 것"이라며 "푸틴은 이 공식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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