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88세를 일기로 선종하면서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에 전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교황직은 통상 백인 남성의 차지였으나, 이번에는 첫 아시아인 교황 등 비(非) 백인 교황 선출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바티칸은 교황 선종 후 3주 차가 되는 시점에 차기 교황 선출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가톨릭교회는 교회법에 따라 교황이 사망하면 15~20일 이내에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

뉴욕타임스 등의 외신을 종합하면 약 5명의 후보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탈유럽화'를 기조로 삼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인 만큼 비 백인 교황 선출 가능성이 다른 때보다 다소 높다는 분석이다.
20개국 이상에서 사상 첫 추기경이 탄생하는 등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기 바티칸은 유럽 중심의 교구를 대외적으로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149명의 추기경을 임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중 절반 이상인 89명을 비유럽권에서 임명, 역대 가장 많은 비유럽권 추기경을 임명한 교황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시아권에 해당해 아시아(21명)는 현재 유럽(54명) 다음으로 많은 추기경을 보유한 지역이다. 이어 아프리카(17명), 북아메리카(16명), 남아메리카(15명) 순이다.
이번에 투표권을 가진 135명의 추기경 가운데 108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기간 임명된 만큼, 그의 이 같은 유지가 이번 콘클라베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크리스티나 트라이너 노스웨스턴대학교 교수는 뉴스위크에 "교황 선출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들 중 100명 이상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임명됐다는 사실은 향후 선출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67) 추기경이 첫 아시아 출신 교황으로 거론된다.
포용·개방의 가치를 적극 옹호해온 타글레 추기경은 교황청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인사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종종 "아시아의 프란치스코"라고 불리우는 등 프란치스코 교황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타글레 추기경은 2015년 "과거에는 가톨릭교회가 동성애자, 이혼·재혼자, 미혼모를 심하게 낙인찍었으며, 이는 이들의 사회적 고립을 초래했다"고 비판하는 등 동성애, 미혼모 문제를 비롯한 가장 논쟁적인 가톨릭교회 이슈에서 진보를 대변해왔다.
타글레 추기경은 2013년 콘클라베 당시에도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됐으나 당시 너무 젊은 나이 등을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임된 콩고민주공화국(DRC) 수도 킨샤사의 대주교 프리돌린 암봉고 추기경(65)도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아프리카 대륙은 전체 인구의 약 18%가 가톨릭 신자일 정도로 교세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496년 이전 세 명의 교황이 '아프리카 혈통'으로 기록됐을 뿐 교구 내에서는 과소 대표되어 왔다.
암봉고 추기경은 교황의 자문기구인 추기경 평의회(Council of Cardinals) 9인 중 한 명으로 활동하는 등 교구 내 권위를 인정받았으며, 생전의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가까웠던 인물이다.

이들의 반대편에는 유럽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교황청 서열 2위' 피에트로 파롤린(70) 교황청 국무원장이 있다.
국무원장은 '교황청 총리'로 비유되기도 하는 직책으로, 이탈리아 출신인 파롤린 국무원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2013년부터 이 직책과 보좌관·공식 대변인을 겸해왔다.
파롤린 국무원장은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조를 일정 부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교황청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지로 주목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으로도 중용을 지켜온 교회 내 '온건파'로 알려져 있다.

'보수로의 회귀'를 상징하는 후보로는 헝가리 출신의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72)이 있다.
존경받는 교회법 학자이기도 한 에르되 추기경은 유럽의 난민 수용과 이혼·동성혼에 반대하는 등 그간 교회 내 전통적 가치관의 수호자로서 목소리를 내왔다.
에르되 추기경은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유럽주교회의 평의회 의장을 지내 유럽 내 연결망이 두터운 것은 물론, 홀로코스트 추모 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등 타 종교와의 교류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빈자의 철학'을 계승하는 교황 후보로는 마테오 마리아 주피 추기경(69)이 거론된다.
이탈리아 출신인 주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빈민과 이주민을 위한 사목 활동을 이어왔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가톨릭 공동체 산트에지디오(Sant’Egidio)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난민·성소수자 이슈에 포용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콘클라베는 교회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가장 예측 불가능한 회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기 저자이자 교황청 출입 기자인 마르코 폴리티는 "교회는 지금 교황과 초보수주의자들 간의 지난 10여 년간의 내전을 지나 회복 중"이라며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유력한 후보라고 할 만한 인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때보다 이번에는 콘클라베가 열리기 전까지 새 교황이 누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콘클라베 내부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콘클라베가 소집되면 각국 추기경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으로 모여 아침 미사를 가진 뒤 비밀 엄수·외부 개입 배제 맹세를 한 후 비밀 투표를 시작한다.
가톨릭교회 현행 규정상 80세 미만 추기경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번 콘클라베에서는 135명의 추기경이 투표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추기경단은 단일 후보자가 3분의 2 이상 과반수를 얻을 때까지 재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교황이 선출되면 추기경단은 투표용지에 연기를 하얗게 만드는 첨가물을 넣어 태운다.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 새 교황이 선출됐다는 뜻이다.
alicemunr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