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 싱가포르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면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심지어 역사학을 전공했고 화교화인사를 공부한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가포르에 태형이 정말 있는지, 부자들이 정말 많은지, 껌을 정말 팔지 않는지' 등 다양하게 물어본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공무원들이 정말 깨끗한지,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였다. 2024년 기준으로 싱가포르 공무원의 연봉을 살펴보면 최고위직인 총리는 연간 22억원을 받으며 부총리는 18억7000만원, 장관급 공무원(MR1)은 17억60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이외에도 국회의원과 시장의 연봉은 6억원에서 9억원 수준에 달한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의 급여도 높다. 관리직(MX9)은 월 1600~2200만원, 중간 관리직(MX11)은 월 480~770만원을 받는다. 초급 행정직(MX12)조차 월 330~620만원 수준이다. 게다가 연간 최대 2, 3개월 치의 보너스를 추가로 받는다.
이렇게 답을 하면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왜 그렇게 많이 주는가. 답은 분명하다. 바로 청렴(혹은 청렴을 강조하는) 관료제야말로 강소국이자 아시아 최고의 부자나라로 불리는 글로벌 허브, 싱가포르로 돈이 모이는 비결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다지만 깨끗한 도시에는 돈이 모이는 이치일까.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청렴한 도시국가 싱가포르에도 보이지 않는 혼탁함이 있다.
싱가포르의 관료제는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와 성과 중심의 인사 시스템이 특징이다. 총리와 내각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며 정책이 신속하게 시행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공무원의 승진과 보상은 철저히 성과에 따라 결정되며 이는 부패를 예방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또한 민간 부문의 효율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공공-민간 협력(PPP)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부패방지법(PCA)을 기반으로 강력한 반부패 정책을 운용한다. 특히 부패 행위 조사국(CPIB)이 독립적인 수사 권한을 가지고 있어 고위 관료 및 민간 기업 관계자의 부패까지 철저히 조사할 수 있다. 또 부패로 얻은 이익을 환수하는 법안(CDSA)을 통해 부정 이득을 원천 차단한다.
높은 급여체계는 공직자의 부패 유인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공직자들은 높은 급여를 받는 만큼 모든 재산을 수시로 공개해야 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할 경우 부패로 간주하여 처벌된다. 모든 공무원은 윤리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며 국민이 부패를 신고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감시 시스템도 운영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싱가포르 내에서 최고의 엘리트들을 공무원으로 선발하기 때문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고위직 공무원은 가장 높은 등급의 엘리트다. 필요할 경우 고위직 공무원은 국가 장학금 제도에 따라 영미권의 최고 대학에서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 국제적 감각을 가진 고위 공무원 배출을 제도적으로 꾀하고 있다. 싱가포르 특유의 경쟁적 교육과정에서 걸러진 가장 상위의 인재는 고위직 공무원으로 선발된다. 초급 공무원 시험도 정책에 대한 논술 시험을 치러야 할 정도로 쉽지 않다.
싱가포르가 청렴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식민 통치하에서 엄격한 규율과 공무원의 청렴성을 강조하는 영국식 관료제가 도입되었으며 이는 독립 후에도 부패 방지 정책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1965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공화국을 건설했을 때 싱가포르는 경제적 불안정과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외자 및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유치해야만 했던 리콴유 정부는 부패를 국가의 몰락을 초래하는 치명적 요소로 간주하며 강력한 청렴 정책을 시행한다. 1960년 부패방지법을 제정하고 부패 행위 조사국을 강화하여 강력한 반부패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이때였으며, 공직자들에게 고액 연봉을 지급하여 부패의 유혹을 원천 차단했다. 고위직 관료들이 모두 하얀 정복을 입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리콴유는 공무원 월급이 낮으면 부패가 필연적이라는 원칙에 따라 공무원의 급여를 민간 기업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며 부패를 예방했다. 그 덕에 지금까지도 싱가포르 내에서 정부와 관료조직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높으며, 심지어 현 경제 상황에 비판적인 젊은 세대조차 정부에 대해서는 신뢰한다는 설문 결과가 있을 정도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청렴성을 바탕으로 강력한 경제 성장 기반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다. 부패 없는 정부 운영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며 이는 외국인 직접 투자(FDI) 유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다국적 기업 유치, 금융 중심지 구축, 자유무역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2023년 기준 GDP는 5014억 달러(세계 31위), 1인당 GDP는 8만4734달러(세계 5위)로, 싱가포르의 경제적 번영을 보여준다.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관료조직의 높은 청렴성은 단순한 제도적 노력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고액 연봉제와 강력한 법적 처벌 체계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 아세안이 떠오르면서 많은 기업이 돈을 가지고 동남아로 향하지만 법인은 싱가포르에 두는 이유 또한 관료 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싱가포르 정부의 도덕성은 항상 의문의 대상이 되어왔다. 싱가포르의 언론은 대부분 정부가 직접 통제하며 이는 독립적인 감시 역할을 약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야당과 시민 단체가 강력한 견제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며, 반정부 성향의 인사들이 법적 조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즉 부패하지 않은 것이 아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닐지 하는 의심이다.
그런 상황에서 싱가포르에는 매년 부패 스캔들이 터지고 있다. 2023년 이스와란 교통부 장관 부패 사건은 고위 공직자가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되며 큰 논란을 일으켰고, 리두트 로드(Ridout Road) 특권 남용 사건은 두 명의 고위 관료가 국가 소유의 고급 주택을 사적으로 사용하며 특혜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이러한 반부패 기조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기업이 저지르는 불법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일종의 선택적 청렴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싱가포르는 청렴성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포용적인 사회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청렴성은 단순한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국가 발전 전략의 핵심 요소이며, 이를 통해 경제 성장과 정치적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 현재 싱가포르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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