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오현주 기자 = 최근 신탁 형태로 재건축을 추진하던 단지들이 조합 방식으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사업 기간 단축과 전문성을 고려해 신탁을 택했으나, 신탁방식 선택 시 발생하는 수수료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진 탓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목동 신시가지 7단지는 올해 2월 신탁 방식에서 조합 방식으로 방향을 바꿨다. 재건축 추진위원회(재준위)에서 소유주를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 10명 중 7명(70.3%·965명)이 조합 방식을 택하면서다.
목동 7단지의 또 다른 재건축 준비 단체인 정비사업추진위원회(정추위)는 2023년 10월 코람코자산신탁과 예비 신탁사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지만, 주민 간 이견이 이어졌다. 최근 투표로 7단지의 신탁방식 추진은 결국 무산됐다.
조합 방식으로 돌아서진 않았지만, 목동 1단지도 한때 신탁 방식을 두고 갈등을 겪었다. 1단지는 지난해 10월 한국토지신탁을 예비신탁사로 선정했지만 업무협약 단계까지 못 했다.
이에 1단지 재준위는 2월 말 코람코자산신탁을 예비 신탁사로 선정하는 안건을 상정했으나, 이마저도 최종 부결됐다. 이후 우리자산신탁과 신한자산신탁 컨소시엄이 예비 신탁사로 선정됐다.
2016년 도입된 신탁 방식은 조합이 일부 수수료를 지불하고 사업 진행 전반에 걸쳐 전문 신탁사가 관리하는 형태다.
조합원 비용 부담이 있지만, 조합 방식에 비해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아 재건축 추진 속도가 빠른 점이 장점이다.
신탁 방식을 추진했다가 조합 형태로 바꾼 사례는 적지 않다. 여의도 대교아파트, 신반포 4차, 방배 삼호 1·2·3차, 압구정 5구역이 대표적이다.
지방에서도 신탁 대신 조합을 택하고 있다. 강원 원주시 단계 주공 아파트는 지난해 11월 한국토지신탁과 계약을 해지했다. 그러다 3월초 HDC현대산업개발을 최종 시공사로 선정했다.
업계는 일부 단지가 재건축 방식을 바꾸는 것은 신탁업계의 재무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풀이한다
건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책임준공형 사업 손실로 부동산 신탁사의 부담은 나날이 늘고 있어서다.
나이스신용평가가 한국토지신탁, 한국자산신탁, 하나자산신탁, 교보자산신탁 등 13개 부동산신탁사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부동산 신탁사의 지난해 평균 부채비율은 97.4%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56.3%) 대비 41.1%포인트(p) 올랐다.
신한자산신탁의 부채비율은 전년(22.6%)에서 155.2%로 7배 수준으로 올랐고, KB부동산신탁의 부채비율은 129.3%로 전년(200.3%) 대비 줄었지만, 여전히 100% 이상이다.
기업 건전성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인 부채비율이 100%라는 의미는 자기자본과 같은 금액의 부채가 있다는 뜻이다.
고준석 연세대학교 상남경영원 교수는 "최근 신탁사들의 재무 건전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며 "이에 조합들이 신탁 형태로 재건축하기에는 리스크가 있다고 판단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7월부터 정부의 신탁사 건전성 강화 조치가 이뤄지면서 조합방식으로 바꾸는 사례가 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7월부터 신탁회사의 토지신탁 취급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서울의 한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하반기부터 관련 조치가 이뤄지면 신탁방식 정비사업 사업 속도는 사실상 멈출 것"이라며 "기존에는 주민과 마찰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으나, 이제는 뚜렷한 장점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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