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86세대, 혁명은 스스로에게 하라…정치권 대국민 반성문 내야"

[국민통합 석학에게 듣는다]"내란 종식을 위해 개헌이 마땅"
"국민 외롭게 하지 말길…마음속의 동상을 세워 줘야"

송호근 한림대학교 석좌교수(도헌학술원 원장)./뉴스1 ⓒ News1
송호근 한림대학교 석좌교수(도헌학술원 원장)./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아픈 충고다."

한국 대표 사회학자인 송호근 한림대학교 석좌교수(도헌학술원 원장)는 지난 4일 헌법재판소에서 내놓은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요지'를 두고 이 같은 평가를 내놨다. 8일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교에서 뉴스1과 만난 송 교수는 약 90분 동안 시종일관 냉철하면서도 차분하게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부터 최근 조기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개헌 논란까지 조망했다.

송 교수는 '8 대 0' 만장일치로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 파면 결정을 한 데 대해 "상식과 원칙에 상당히 충실한 판결"이라고 했다. "만장일치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판결이 나왔다면 논란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라고 봤다. 송 교수는 선고 전반에 담긴 '여야 모두를 향한 일침'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판단하자면 (정치권 모두의) 공동 책임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송 교수는 그러면서 탄핵을 당한 여권은 물론 야권을 향해서도 매섭게 책임을 물었다. 그는 "대통령의 통치 실패는 대한민국의 실패"라며 "(야당이) 그 상황을 갖고 온 행위자 중 하나라면 대국민 반성문을 함께 내놔야 한다"고 했다.

송 교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개헌보다 내란 세력 종식이 우선"이라고 한 것에 있어서도 "새로운 작란(作亂·난을 일으킴)을 예고하는 듯한 목소리로 들려 불안하고 불길하다"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오는 6월에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서 여야를 통틀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송 교수는 "내란은 종식됐다"고도 강조했다.

현 정치 권력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86세대를 향해 송 교수는 "세상은 달라졌고 변할 때가 됐다"며 "혁명은 스스로에게 하라"는 충고도 남겼다. 정치인들을 향해 "정치인들은 정치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국민들을 외롭게 하지 마라"라고 당부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모두 없애버린 탓에 국민이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게 됐다는 게 송 교수의 진단이다.

다음은 송 교수와의 일문일답.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이란 결정을 내렸다.

▶상식과 원칙에 상당히 충실한 판결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8 대 0' 만장일치로 판단을 내린 것은 상당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의라는 것이 사람들 마음속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려면 재판관 개개인 성향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어야 한다. 이른바 '무지의 장막'이 벗겨진 상태에서 판결이 내려진다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여러 우려가 불식됐다. 다섯 가지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위법함을 조목조목 얘기했고 여야 모두를 질타함으로써 '사법의 정치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광화문의 반탄(탄핵 반대) 군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지 않았나. 만장일치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판결이 나왔다면 논란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다. 소문과 풍문으로 사람들이 갖게 된 잘못된 신념이 완전히 제거되는 효과를 갖고 왔다.

헌재 선고 요지를 살펴보면 여야 모두를 향해 일침을 놓은 대목들이 눈에 띈다.

▶헌법재판소의 책임 범위를 넘어서는 조언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잘한 말들이다. 아픈 충고다. 정치적으로 판단하자면 (정치권 모두의) 공동 책임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난 뒤 대국민 성명을 내서 헌법재판소 판결을 받아들인다, 앞으로의 정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해달라는 반성과 요구를 했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승리했다고 착각하는 쪽이 있다는 것이다. 판결로부터 살아난 청구인(국회)도 조언과 충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승전가를 부르는 것은 정말 잘못됐다. 민주당은 정치를 적대정치의 끝판처럼 끌고 온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 국민들은 한쪽만 내란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작란으로 여기에는 원인과 구조가 있고 그 안에 민주당이 들어가 있다. (국민들은) 심하게 말하면 (난을) 유발했다고 생각한다. 탄핵을 30차례나 하는 등 대통령의 통치가 실패하도록 2년 반을 노력했다. 야당이 대통령의 통치 실패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우리나라 적대정치의 핵심적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통령의 통치 실패는 대한민국의 실패다. 그 상황을 갖고 온 행위자 중 하나라면 사실 지금쯤은 대국민 반성문을 함께 내놔야 한다.

야권에선 "개헌보다 내란 세력 종식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내란에 함께 엮였던 자신(민주당)도 종식시키는 것일까. 작란에 엮였던 정당도 소정의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고 앞으로 정치의 본질에 충실할 것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한 번쯤은 나와야 한다. '내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개헌하지 않는다', '개헌으로 내란을 덮으려 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작란을 예고하는 듯한 목소리로 들려 불안하고 불길하다. 내란은 종식됐다. 안 된 것은 민주당의 반성이다. 오히려 내란 종식을 위해서는 개헌이 마땅하고 그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정권욕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국민 다수의 기대나 소망을 무화(無化)시키는 것이다. 더구나 입법 수장인 국회의장이 그런(개헌) 제안을 했다면 일단은 존중해줘야 하나 국회의장을 '개헌으로 내란을 덮으려는 사람'으로 바꿔버렸다. 이건 적대정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헌은 적대정치의 원인을 진단하고 고착화된 구조를 바꾸려는 정치 발전 시도다. 탄핵 찬반을 떠나 일반 유권자들은 12·3 비상계엄이나 민주당의 2년 반 동안의 행위에 대부분 다쳐있을 텐데 그 상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새 대통령이 등극해도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5년간 자신들은 안전하다면서 어떤 위험한 요인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날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본문 이미지 - 송호근 한림대학교 석좌교수(도헌학술원 원장)./뉴스1 ⓒ News1
송호근 한림대학교 석좌교수(도헌학술원 원장)./뉴스1 ⓒ News1

대한민국 적대정치는 참여정부에서 시작돼 문재인 정부 때 폭발했고 그 중심에는 86세대가 있다고 짚은 바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과거 '앞으로 진보정치는 50년 간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좌파정당의 기세로 20년간 달려온 것은 사실이다. 불길한 점은 20년간 해왔던 정치적 행태나 의식 구조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0세기적 혁명에 대한 향수가 훨씬 강해지고 있다. 지금 그 기세가 끝나지 않고 새로운 기세가 시작됐다. (현 정치의 중심에 있는) 86세대가 자연적으로 퇴장하려면 10년은 남았는데 그들의 청년시절 혁명 이념의 성취가 다른 중요한 것들을 다 덮어버리고 있다. 그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조직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진보정치의 실패인데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것을 상대할 보수의 논리와 세력도 약화돼 있다. 이 시대 보수의 논리, 정책관, 세계관이 무엇인지에 대해 국민들이 뚜렷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당이 그런 것을 만들어내지 못함에 따라 (진보 측의) 기세에 눌리는 것이다.

젊은층이 86세대와 견해 차를 보이고 계엄 대통령을 옹호하는 모습도 화제였다.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지금의 대한민국 권력을 붙잡고 있는 주요 세력인 586세대는 북한을 감싸 안아야 한다는 민족 문제, 그리고 분배(평등) 문제에 관해 구조화된 신념이 있다. 이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국가정체성과도 연결돼 있고 청춘을 바친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좌측으로 움직여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MZ세대는 민족과 평등 문제에 대해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있다. 이를테면 걸핏하면 미사일을 쏴대는 폭력적 조직(북한)을 민족이라고 해서 품어야 하느냐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비정규직의 급등을 갖고 왔고 최저임금제를 시행했더니 사람들이 자꾸 해고됐다.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강요하면서 '평등이라는 이상향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면 '내가 왜 꼭 그래야 하느냐'는 마음이 든다. 좌파정권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독(毒)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해야 할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층이 586 이데올로기에 동의한다는 건 어불성설일 것이다. 점점 멀어질 것이라 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을 '분열의 도구'로 평가한 바 있다. 개선이 이뤄질 수 있을까.

▶개선될 수 없다. 21세기 새로운 문명 기기를 어떻게 막겠나. 막는다면 그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것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점차 정치적 부족주의로 갈라질 것이라 본다. 매스컴 부족주의, SNS 부족주의와 같은 식이다. 이런 부족주의가 극대화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현대 정치학자들도 풀어내지 못하는 문제다. 기술과 정치의 문제다. 20세기에는 이성으로 기술의 지배력을 방어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기술합리성이 완전히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비판적 이성이 기를 못 펴는 시대다. 21세기 민주주의는 어떤 체제가 돼야 하느냐는 건 전 세계 정치학자들의 난제이고 뚜렷하게 해답을 낸 사람이 없다. 대개 규제와 관련해 얘길 내놓는데 개인이 (휴대전화와 같이) 모든 정보의 소통수단을 갖고 다니는 시대란 점을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가장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고 꼽는 정치 개혁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실 대통령제보다도 국회와 정당 개혁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대통령의 임명 권한과 거부권 등에 있어 제한을 둬야 한다는 것도 인정하나 현 87년 헌법의 특징은 당시 독재 시대상에 따라 입법권을 너무나 강화해 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남용한 정치 체제가 지금이다. 허용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썼고 그러니 이번 사태도 일어났다고 본다. 국회의원 수는 현 300명에서 200명 정도로 줄여야 한다고 본다. 중선거구제를 도입하고 제3당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한쪽은 무척 커지고 한쪽은 왜소해지는 (양당) 정당 체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제3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함으로써 정당들 간 서로 협상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 수도 있다. 민주 정치라는 것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주고받기)이다. YS(김영삼)·DJ(김대중) 땐 서로 동지애가 있었으나 지금은 점차 동지애가 적대감으로 변한 상태다. 정치학교도 만들어 정치가를 양성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은 의원실에서 보좌진으로서 활동하는 것 등이 정치학교 격인데 이건 결국 보스(Boss)정치다. 그나마 보스가 괜찮다면 모르지만 엉망진창인 사람 밑에 있게 된다면 '우두머리 패싸움'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시대의 어른으로서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당부 말씀이 있다면.

▶우선 지금의 헌법 체제는 생명이 끝났다. 새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희망을 걸지 마라. 관행을 버리려면 개헌해야 한다. 공익의 최정점에 있는 것은 국가의 유지, 안정이다. 정치인들은 미래를 얘기할 수 있도록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세계 변화가 어마어마한 상황에서 한국의 위상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를 괴롭혔던 모든 문제가 사실은 소모적 문제라는 점을 파악하게 된다. 국민들은 나름대로의 분노가 다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정치인들의 권력 욕심에 동원되고 오염됐다고 본다. 이를 부추기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586세대는 당신들의 인생 목표가 성취되는 날 대한민국이 끝장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세상은 달라졌고 변할 때가 됐다. 혁명은 스스로에게 하라. 한국의 민주주의는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모두 없애버리기도 했다. 이를 '존경의 철회'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에 동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딱 두 사람뿐이다. 국민에게 '마음속의 동상'을 세워줘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존경의 철회를 전면적으로 일으킴으로써 모든 사람이 외로워졌다. 정치인들은 정치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국민들을 외롭게 하지 마라.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도헌학술원 원장)

1956년 1월 4일생으로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198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임용돼 학과장과 사회발전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1998년 스탠퍼드대 방문 교수, 2005년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초빙교수를 지낸 후 서울대 석좌교수,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석좌교수 등도 지냈다. 2022년부터 현재까지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과 석좌교수로 활동 중이다. 대표 저서로 한국인의 기원을 탐구한 3부작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국민의 탄생'이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애환을 담은 '그들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를 비롯해 최근에는 한국 적대정치 20여 년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민주주의 방향을 제시한 '적대정치 앤솔러지'를 출간했다.

cho11757@news1.kr

대표이사/발행인 : 이영섭

|

편집인 : 채원배

|

편집국장 : 김기성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종로 47 (공평동,SC빌딩17층)

|

사업자등록번호 : 101-86-62870

|

고충처리인 : 김성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병길

|

통신판매업신고 : 서울종로 0676호

|

등록일 : 2011. 05. 26

|

제호 : 뉴스1코리아(읽기: 뉴스원코리아)

|

대표 전화 : 02-397-7000

|

대표 이메일 : webmaster@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사용 및 재배포, AI학습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