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법원이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가 동료 16명을 살해한 후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민을 강제 북송한 조치는 잘못됐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아직 1심 판결이긴 하지만, 법원의 이번 판결은 귀순 의사가 있는 탈북민은 '전원 수용'이 원칙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허경무 부장판사)는 19일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각각 징역 10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함께 기소된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에게는 각각 징역 6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탈북 및 귀순 의사가 있는 북한 주민을 강제로 송환하는 것은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라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북한 주민들이 헌법상 우리 국민에 해당하고 이미 남측 지역에 도착한 상황에서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추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취지로 보인다.
정 전 실장 등이 이들이 북한에서 16명을 살해했기 때문에 '흉악범'에 해당하고, 그 때문에 격리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흉악범은 재판 없이도 국가 권력에 의해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하며 정 전 실장 등에 적용된 '법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행사를 방해한 혐의'도 인정했다.
법원의 판단은 2019년 발생한 강제 북송 사건은, 정부가 해당 탈북민을 우리 국민으로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민이 북한에서 저지른 죄가 있더라도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일 경우 '정무적 판단'이 아닌 법적인 판단이 우선 적용돼야 한다는 논리로 읽힌다.
그 때문에 법원이 사실상 '탈북민 전원 수용'이 정부의 원칙이 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는 측면도 있다는 해석이 뒤따르는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고착화된 분단으로 인해 제도와 법이 미비해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남북 분단 이후 형성됐던 대결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부분의 제도가 구축돼 이 사건과 같은 사안에 적용할 법률 지침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라고 지적하며 "제도 개선이 우선임에도 그것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일을 담당한 사람만을 처벌하는 게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결국 이 사건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고인들과 같은 이런 결정, 내지는 반대되는 결정은 결과적으로는 다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며 "혼란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우리 스스로 방치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면서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부가 정 전 실장 등에 대해 죄를 묻되 형의 선고를 미루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면소된 것으로 보도록 하는 '선고유예' 결론을 내린 이유다.
실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북한이탈주민법) 제9조(보호 결정의 기준 등) 2항은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는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판단하는 방식 및 주체가 불분명해 실질적인 효력이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날 법원의 판단도 상위법인 헌법과 형법에 맞춰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날 조선일보의 보도로 러시아에 파병됐다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잡힌 병사가 한국으로 귀순 의사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만일 이날 판결이 문재인 정부의 결정에 법적 하자가 없었다는 것으로 나왔다면, 전쟁에서 살상 가능성이 있는 이 병사의 귀순 문제도 정무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외교부는 "파병 북한군이 귀순 의사가 있다면 전원 수용이 원칙"이라며 향후 필요한 보호와 지원 방안을 우크라이나 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정부가 파병 북한군 포로를 국제법상 '전쟁 포로'가 아닌 '탈북민' 지위를 적용해 우크라 측과 협상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국제법상 북한군 포로가 전쟁 포로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북한이 참전을 인정하는 '교전 당사국'이 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이 조건이 충족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귀순 의사가 있는 파병 북한군을 '탈북민'으로 대우하고 이와 관련한 심리전을 전개한다면 북한군의 이탈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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