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상 돼지머리에 현금 꽂는 것 정도야 괜찮겠지?
(춘천·속초=뉴스1) 윤왕근 한귀섭 기자 = 개업식이나 시무식 등 중요한 일을 앞두고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올리는 풍습은 한국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미풍양속이다.
고사상 돼지머리 입에 현금을 꽂으며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역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유지들의 '고사상 액수'에 따라 그 사람의 배포를 가늠하기도 한다.
풍요와 행운을 기원하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이 풍습.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에 뜻을 둔 이라면 이 돼지머리를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선거판에선 이 돼지머리가 행운을 막고 재앙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춘천지법 형사2부(김성래 부장판사)는 고사상에 차려진 돼지머리에 현금을 꽂고, 공무원·이장 등이 있는 종무식에서 지지를 호소한 군의원 선거 예비후보자 A 씨에게 벌금 90만 원을 선고했다.
양구군의회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A 씨는 지난해 1월 1일 양구군 앞마당에서 개최된 한 행사에 참석해 고사상에 차려진 돼지머리에 5만 원권 1매를 꽂아 기부행위의 금지제한 등 위반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앞서 이장직을 갖고 있던 그는 지난 2023년 12월 29일 양구의 한 회의실에서 개최한 종무식에서 공무원과 이장 등 약 30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이크 앞에서 축사를 하면서 “보궐선거에서 꼭 이겨 우리 이장님들과 직원분들 쪽팔리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고사상에 차려진 돼지머리에 현금 5만 원을 꽂은 사실은 인정하나 공개된 장소에서 미풍양속에 따라 한 것이어서 공직선거법상 금지되는 기부행위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없었고, 사회상규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양구군선관위에서 실시한 입후보 설명회에 참석한 사실이 있고,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의 기부행위가 상시 제한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지지호소 등 정치적 발언이 없었고, 입후보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닐까.
김도균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위원장은 입후보나 공식 출마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돼지머리와 가까이했다가 최근 고초를 겪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춘천지법 속초지원 제2형사부(박세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 위원장의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결심공판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2023년 3월 지역에서 열린 조기축구회 시무식 등에 참석해 돼지머리에 현금을 꽂는 등 기부행위의 금지제한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물론 검찰이 김 위원장에 대해 구형한 '벌금 500만 원'에는 조기축구회 시무식에서의 기부행위 혐의뿐 아니라, 지역 행사장 방문 시 지인으로부터 차량을 제공받고 그 가족으로부터 110여 회의 차량노무를 제공받은 혐의, '비정규 학력'이 담긴 명함을 배부해 허위사실을 공표하며 선거운동을 한 혐의 등이 포함돼 있다.
육군 수방사령관 출신의 김 위원장이 정치의 뜻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것은 2023년 6월. 또 22대 국회의원총선거 속초·인제·고성·양양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것은 같은 해 11월 초로, 조기축구회 시무식에 참석해 고사상 돼지머리에 돈을 꽂은 3월은 정확하게는 '민간인' 시절이다.
김 위원장 측은 지난해 11월 관련 첫 재판에서 "축구동호회원의 입장에서 한 행위를 기부행위라고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위원장의 행위가 22대 총선을 염두에 두고 한 행위라 보고 이를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6일 진행된 검찰 측 증인신문에선 검찰의 공소장에 김 위원장이 현금 기부를 했다고 적시된 속초지역 축구동호회 2곳 회장 2명이 출석하기도 했다.
이날 검사는 축구동호회 관계자들을 상대로 2023년 3월 열린 동호회 시무식에서 김 위원장이 현금 5만 원을 기부한 행위와 22대 총선 출마 연관성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이에 조기축구회 관계자들은 "동호회원 입장으로서 한 일반적인 행위이며, 당시 출마 암시나 정치적 발언은 들은 적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결심공판에선 검찰은 "정치 신인으로서 기성 정치인들과의 경쟁에서 정치적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선거 운동을 진행하면서 불법을 저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선거 범죄와 부정 선거운동,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의 범죄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공정한 선거 제도와 정치 제도를 흔드는 범죄로서 엄벌이 필요하다"고 벌금 500만 원을 구형했다.
공직선거법상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고 해당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5년간 제한된다.
3월 21일 예정된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가 김 위원장의 몇가지 혐의 중 '돼지머리 기부행위'를 유죄로 판단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