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이승배 기자
"CES 같은 전시회는 스타트업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차라리 교육이면 교육, 통신이면 통신처럼 특정 산업에 특화한 전시회를 가는 게 스타트업에는 훨씬 낫습니다."
김종갑 글로벌디지털혁신네트워크(GDIN)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앞다퉈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가하는 최근 경향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조력자' 역할을 자처해 온 그가 스타트업의 CES 참가를 만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수십년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국내 스타트업의 현지 진출을 도왔고, 지금은 수많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GDIN(전 본투글로벌)에서 K-스타트업의 글로벌화를 돕고 있는 김 대표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1월에 열리는 CES는 미래 혁신 기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제 행사다. 국내 대기업부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미래 기술을 뽐내는 '혁신의 장'으로 꼽힌다.
국내 스타트업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부스를 통해 CES에 참가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CES 스타트업관에는 총 1300여개 사가 참가했다. 이 중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625개 사로 절반에 육박한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전해지는 'CES 스타트업관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아도 대화가 통한다', '주변 식당에는 온통 한국인뿐이다'라는 말이 마냥 우스갯소리는 아닌 셈이다.
유행처럼 번지는 스타트업의 CES 참가에 대해 김 대표가 지적하는 지점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CES에 참가해 과연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CES 혁신상까지 받았다고 하지만 시간과 돈만 쓸 뿐 성과는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이야기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CES에 900개 기업이 참가했다고 하는데 과합니다. 우리끼리 장사하게 생겼어요. 그럴 거면 강남 코엑스에서 하는 게 낫죠. CES 혁신상도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혁신상이 비즈니스에 별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이력 한 줄 추가하는 수준이죠. 이 한 줄에 목 메는 기업이라면 모를까요."

김 대표가 지적하는 국내 스타트업의 CES 참가 문제는 또 있다. 제품 상용화가 덜 된 상태에서 기술만 갖고 참여하는 국내 스타트업이 다수라는 점이다.
CES는 당장 거래 계약을 희망하는 해외 바이어들이 많이 방문한다. 하지만 국내 스타트업은 완성이 덜 된 시제품만으로 참가하기에 실제 거래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창업가들에게 '제품'과 '기술'을 구분하라고 조언했다. 많은 창업가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판매하려고 하지만 제품이 없으면 투자자 입장에서 기술은 기술일 뿐이다. 이른 시일 내에 양산할 수 있는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스타트업이 CES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도 다른 셈이다.
제품이 아닌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니 '기술 탈취' 우려도 생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알리기 위해 갔다가 기술만 도둑맞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에도 스타트업이 CES와 같은 전시회에 자꾸만 나가는 이유에 대해 김 대표는 "스타트업의 CES 참가 실적이 공공기관과 지자체의 성과가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CES가 열릴 때가 되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지자체는 자신들이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CES 참가 규모를 홍보한다. '역대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도 매년 갱신된다.
역대 최대 규모를 더 이상 키우기 어려우니 이제는 'CES 혁신상' 규모도 중요하다. 그러면서 생긴 공공사업이 'CES 혁신상 컨설팅 사업'이다. 혁신적이라 상을 받는 게 아니라 상을 받기 위해 혁신을 맞춰가는 과정인 셈이다.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전문 산업별로 열리는 특화 전시회에 참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ES처럼 여러 기술이 동시에 공개되는 전시회가 아니라 교육, 통신, 헬스케어처럼 어느 한 산업에 집중한 전시회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GDIN은 지난해 특정 산업을 겨냥한 전시회에 다수의 국내 스타트업을 데려갔다. 지속가능기술 전시회 '스시테크 도쿄 2024', HR테크 전시회 '미국 ATD 2024 국제 엑스포', 헬스케어 전시회 '독일 메디카 2024' 등 총 5곳이다.
구체적인 성과도 있었다. 스시테크를 다녀온 스타트업들은 현지 업체들과 기술검증(PoC)을 협의하거나 후속 미팅 후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했다. 다른 전시회에서는 투자 유치 논의까지 오갔다.
김 대표는 "방산 스타트업이 CES에 가면 관련 산업 관계자를 얼마나 만나겠는가. 내 상품을 양산해 줄 곳을 만나거나 내 기술과 비전을 보고 투자해 줄 곳을 만나야 한다"며 "창업가들은 자기 돈을 써서라도 이런 곳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정리=이정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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