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본격화하면서 국내 철강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관세가 전면 부과되는 멕시코·캐나다·중국 내에선 직접 타격은 피했지만, 철강재를 공급하는 고객사로부터 가격 하락 압박이 뒤따를 수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철강업계 실적 악화를 유발하는 중국산 저가 철강의 추가 유입 가능성도 고민거리다. 국내 업계는 정부에 중국·일본산 저가 후판 및 열연에 대해 반덤핑(AD) 제소를 한 상황이지만, 고사 위기에 놓인 업계를 뒷받침할 입법적·정책적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이날(현지시간)부터 멕시코·캐나다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 중국 제품에는 10%의 추가 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관세 무기화'를 공언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무역전쟁을 본격화한 것이다.
값싼 인건비와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 혜택을 노리고 멕시코에 투자했던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업체와 기아·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업계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멕시코에 차량용 강판(CGL) 공장을 둔 포스코는 대부분 내수용이라 직접 영향권에선 비껴갔다.
포스코홀딩스(005490)는 전날(3일) 콘퍼런스콜에서 "멕시코를 거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물량은 10만 톤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판매량의 0.0몇프로 수준"이라며 "판매가 급격하게 줄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철강에 대해서만 관세가 부과된다면 멕시코 내에서 철강을 더 판매할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고객사의 가격 인하 압박이 뒤따를 수 있는 점은 리스크다. 멕시코 현지에서 철강재를 공급받는 고객사가 완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경우 높아진 관세의 일부를 원가 절감으로 상쇄할 가능성이 있는데, 후방산업인 철강사가 '스플래시 대미지'를 입을 수 있어서다.
포스코홀딩스는 "최악은 멕시코에서 만들어져서 미국으로 들어가면 완성차에 관세가 부과되는 경우"라면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차량이 240만 대가량 되는데, 고스란히 미국 소비자들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철강재 가격 인하)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될지는 면밀히 보고 있다"고 했다.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국내 유입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고민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공약했던 60%보다는 덜한 10%의 관세만 일단 부과했는데, 미중 협상 결과에 따라 향후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이 열려 있다. 수출길이 한층 더 막힌 중국산 저가 철강이 국내로 머리를 돌릴 수 있다.
이미 철강업계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수입산 철강재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걸며 반격에 나선 상태다. 현대제철(004020)은 지난해 7월 중국산 후판에 이어 12월에는 중국과 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신청했다. 이중 중국산 후판에 대해선 무역위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전년보다 6.1% 증가한 877만 톤으로 2017년 이후 최대치를 찍었다. 국내 시장에 들어온 중국산 후판은 국산보다 20%, 열연강판은 5~10% 싸게 유통된다. 철강업계가 수익성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저가 철강재를 꼽는 이유다.
업계는 이르면 이달 말 수입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 예비판정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열연 반덤핑 제소에 대한 예비판정은 7월쯤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반덤핑 제소 외에는 수입산 저가 철강재의 덤핑 유입을 막거나 철강사의 손해를 보전할 정책적 지원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대제철(004020)이 미국 전기로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인 점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영업이익 3144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60.6% 급감했다. 2022년(1조6165억 원)과 비교하면 2년 새 수익성이 5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현대제철은 미국 남동부 지역에 전기로 제철소를 건립, 현대차의 미국 조지아주·앨라배마주 공장과 멕시코 공장에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 강화 정책에 대한 대응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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