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SK그룹은 지난해 12월 SK스페셜티의 지분 85%를 2조 7000억 원에 매각했다. 특수가스 제조사인 SK스페셜티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 과정에 사용되는 삼불화질소(NF3)와 육불화텅스텐(WF6) 제조 분야에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2. 삼성전자(005930)는 DDR4와 LPDDR4 등 레거시 메모리 매출 비중을 지난해 기준 30% 초반에서 올해 한 자릿수 수준까지 축소하기로 했다.#3. 현대자동차(005380)는 올해 상반기 가동하는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연간 생산량을 30만 대에서 50만 대까지 늘리기로 했다.
(서울=뉴스1) 김종윤 김성식 박주평 기자 = 기업들이 새판을 짜고 있다.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한 리밸런싱(사업 재편)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더 광범위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SK는 세계 시장 1위이자 캐시카우를 맡는 효자 사업까지 매각하는 초강수까지 꺼냈다. 눈앞에 이익보단 AI(인공지능) 등 미래 먹거리 확보가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강력한 자국 보호주의를 펼치는 트럼프 대통령에 맞춰 미국 투자를 늘리고 글로벌 생산기지 조정을 통해 공급망 재편에도 나서고 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SK㈜는 특수가스 제조사 SK스페셜티의 지분 85%를 2조 7000억 원에 매각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 과정에 사용되는 특수가스를 생산하는 SK스페셜티는 삼불화질소(NF3)와 육불화텅스텐(WF6) 제조 분야에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24년 3분기 누적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312억 원, 828억 원이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15.6%에 달하는 알짜 사업이다.
재계는 대외 불확실성 위기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관세로 통상 무역 압박을 높이고 있어서다. 세계 1위 사업 매각이란 초강수까지 꺼낼 정도로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고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달 발표한 '경제전망 수정'을 통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내놨던 전망치보다 0.4%p 낮췄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빠른 리밸런싱으로 △SK렌터카(8200억 원) △SK피유코어(4024억 원) △CMP(Chemical Mechanical Polishing)패드 사업(3410억 원) △박막사업부(950억 원) 등 매각을 완료했거나 막바지 작업 중이다.
특히 AI에 방점을 두고 리밸런싱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2026년까지 80조 원의 재원을 확보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AI 산업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적극적인 리밸런싱 작업으로 현금을 확보하는 전략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적자에 허덕이는 석유화학 사업 재편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의 증설과 산유국인 중동까지 대형 투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국내 기업의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했다. 문제는 한국 기업이 수년간 누적된 공급과잉과 추가 증설 악재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업 구조를 범용에서 스페셜티로 빠르게 전환하려는 배경이다.
이달 롯데케미칼(011170)은 파키스탄 법인(LOTTE Chemical Pakistan Limited·LCPL) 지분 75.01% 전체를 978억 원에 매각했다. LCPL은 범용 제품인 PTA(Purified Terephthalic Acid·고순도 테레프탈산)를 생산하는 법인이다.
LG화학(051910)도 여수 NCC(나프타 분해시설) 2공장을 잠재적인 매각 대상으로 올려놨다. NCC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활용해 석유화학의 에틸렌을 포함한 각종 기초 유분을 만드는 생산시설이다. 중국의 공격적인 증설에 막혀 비핵심 자산으로 분류됐다. 올해 중국의 에틸렌 연산은 6007만 톤으로 지난 2020년(3218만 톤) 대비 2배가량 증가한다. 오는 2027년 추정 연산은 7225만 톤이다.
중국 업체들과 경쟁 심화로 최근 3년간 적자를 낸 LG디스플레이(034220)는 비핵심 자산을 매각했다. 지난해 9월 중국 광저우 대형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및 모듈 공장 지분을 중국 TCL 그룹 자회사인 CSOT(차이나스타)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매각 금액은 총 108억 위안(약 2조 300억 원)이다. 이로써 LG디스플레이의 LCD 생산 라인 정리가 완료됐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DR5·LPDDR5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DDR(더블데이터레이트)4와 LP(저전력)DDR4 등 레거시(구형) 메모리를 저가에 대량 공급한 것에 대한 대응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DDR4와 LPDDR4 등 레거시 메모리 매출 비중을 지난해 기준 30% 초반에서 올해 한 자릿수 수준까지 축소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 'M15X'와 용인 클러스터 첫 번째 팹에도 HBM 생산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멕시코에 미국향 가전·TV 생산기지를 둔 업체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지난 4일부터 멕시코·캐나다에 부과하기로 했던 25% 관세를 한 달간 유예했다. 하지만 멕시코 관세 부과가 실현되면 피해가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세탁기 공장을, LG전자(066570)는 테네시주에서 세탁기·건조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 공장 부지에 가전 등 공장을 새로 짓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미국 현지 생산비용이 멕시코보다 높은 만큼 관세 부과에 따른 유불리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자동차(005380)와 기아(000270)는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한다. 올해 상반기 가동하는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HMGMA의 연간 생산 능력은 30만대이지만, 최근 상황이 급변하자 50만 대까지 늘리기로 했다. 기존 앨라배마(현대차)·조지아(기아) 공장의 생산 물량(70만대)까지 더하면 양사 미국 생산량은 연간 120만 대로 늘어난다. 지난해 판매량(170만 대)의 70%를 미국 현지 생산으로 조달할 수 있는 셈이다.
생산 차종도 당초 전기차만 예정됐지만 하이브리드차(HEV)를 함께 혼류 생산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핵심 수출국인 미국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서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비핵심 자산 정리뿐 아니라 합병으로 조직을 슬림화해 빠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passionkj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