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됨에 따라 탈원전, 대왕고래로 대표되는 '윤석열표 에너지 정책'도 재검토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왕고래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는 발표부터 사업 진행까지 논란이 계속됐다. 예산 논쟁이 격화하면서 결국 첫 시추는 한국석유공사가 비용 1000억 원을 대부분 부담해 추진했으나, 경제성 확보가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국회에선 원점 재검토 목소리가 커져 대통령 파면 후 사업 진행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탈원전 폐기는 윤 전 대통령이 짧은 정치 여정에서 전면에 내세운 정책이다. 국정과제에서도 탈원전 폐기는 전 정권과의 차별화 정책으로 분류됐다. 다만 원전 확대에 비판적이던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최근 들어 실용주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원전 정책은 향후 대선 정국에서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4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사상 두 번째로 현직에서 파면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과 함께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 온 에너지 정책도 동력을 잃게 됐다.
윤 전 대통령과 에너지 정책은 인연이 깊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1년 검찰총장을 그만둔 후 서울대학교 원자력핵공학과를 찾아 "정치 참여 계기가 월성 원전 사건"임을 밝히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이후 대선 후보가 된 뒤에도 원자력발전 비중을 30%로 유지한다는 공약을 내놓는 등 일관적인 '탈탈원전'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대통령 시절 본인이 직접 발표한 첫 국정브리핑도 에너지 정책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동해 가스전 주변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며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처음 국민들에게 알렸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유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 검증을 거쳤다. 지금부터는 (동해가스전에) 실제 석유와 가스가 존재하는지, 실제 매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탐사 시추 단계로 넘어갈 차례"라며 대왕고래 시추 프로젝트의 시작을 야심 차게 알렸다.
그러나 국정브리핑 후 자원 매립 가능성을 분석한 액트지오의 신뢰성 논란, 사업성 논란, 예산 논란이 줄이어 제기되며 논란이 확산했다.
동해 심해 가스전 분석 업체인 액트지오는 업력이 짧고, 개인 사업 형태의 소규모 기업이라는 점에 신뢰성 의혹이 번졌다. 결국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고문이 방한해 기자 간담회를 통해 의혹 해소에 나서기도 했다.
사업성 논란은 심해 가스전 시추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채산성이 확보되기 어렵다는 주장에서 시작됐다. 시추 당 1000억 원이 필요한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리스크 없는 자원 탐사는 없으니 시도해 볼 만하다는 입장이 맞섰다.
갈등은 예산 논란으로 이어졌다. 결국 여소야대 상황에서 497억 원의 예산이 삭감되며 석유공사 자체 조달 자금으로 1차 시추가 이뤄졌다. 2024년 12월 시작된 대왕고래 시추는 2025년 2월 마무리됐다. 결과는 경제성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시추에서 잠정적으로 가스 징후가 확인됐지만 그 규모가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은 아니었다"며 "그러나 전반적인 지질구조(석유 시스템)는 양호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대왕고래 자체는 경제성 확보가 어렵지만 지질 구조가 석유 생산 가능성이 있으니 다른 지역 탐사는 해볼 만하다는 취지였다.
정부는 추가 시추를 추진하되 외부 자본 유치를 통한 리스크 관리 방침을 세웠다. 석유공사는 3월부터 외부 자본 유치를 위한 입찰 절차를 시작했다. 사업자 선정은 7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국회에서는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관련해 여전히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경제성 확보가 어렵다는 발표 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은 사업 재검토 압박을 강화했다.
아울러 가스전 개발 사업을 추진해 온 한국석유공사 김동섭 사장 임기가 9월 만료될 예정이어서 이후 사업 동력이 상실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됐던 원전 비중의 단계적 축소,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는 원자력 업계·학계와의 갈등으로 이어졌고 정쟁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쇄에 따른 논란은 국민의 힘의 검찰 고발로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퇴임 후 첫 행보로 서울대 원자력 핵공학과를 찾아 "총장을 관둔 것 자체가 월성원전 사건 처리와 직접 관련이 있다"며 "제가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음으로 양으로 굉장한 압력이 들어왔다"며 원전 정책에 대한 관심을 밝힌 바 있다.
이후 후보 시절에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공학 전공 학생과 간담회를 여는 등 친원전 행보를 이어갔다.
윤석열 정부는 탈-탈원전 정책을 빠르게 추진했다. 고리 2호기 계속 운전 신청을 시작으로 정권 내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계속운전 신청이 이어졌다.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에는 10기의 원전 계속운전 심사가 접수됐다. 신한울 2호기의 운영 허가가 나왔고 신한울 3, 4호기 건설 허가도 내려졌다.
현재 추진 중인 주요 원자력 정책 이슈는 체코 원전 수주 최종계약, 계속운전 기간 확대 논의,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 개발 등이 있다.
2024년 체코 원전 수주전에서는 정부와 기업 등 '팀 코리아'의 노력이 합쳐져 프랑스를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덤핑 수주 논란,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재권 분쟁이 있었으나 어느 정도 해소가 되면서 이달 최종계약을 앞두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강력히 추진된 원자력 정책이 파면 이후 뒤집힐지는 현재 미지수다. 원전에 강력히 반대했던 민주당에서 최근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월 '에너지 믹스 대책 간담회'를, 3월에는 '합리적 에너지믹스 토론회'를 열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모두 포함한 에너지 배분 생산 전략을 논의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동아 민주당 의원은 "단순히 원전을 무작정 늘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에너지가 섞인 에너지믹스로 에너지 안보와 원활한 전력 수급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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