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유럽연합(EU)이 미국을 방문하는 당국자들이 미국의 첩보 활동에 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일회용 휴대전화와 기본형 노트북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복수의 소식통은 EU 집행위원회가 다음 주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집행위원 및 고위 관계자들에게 이같은 새로운 지침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오는 21~2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IMF 및 WB 춘계회의에는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경제담당 집행위원, 마리아 루이스 알부케르케 EU 금융서비스 집행위원, 요제프 시켈라 EU 개발원조 담당 위원이 참석할 예정이다.
미국을 방문하는 EU 주요 인사들에게는 △국경에서 휴대전화를 끌 것과 △스파이 활동으로부터 보호하는 특수 보안용 파우치(special sleeves)에 휴대전화를 보관하도록 하는 등의 지침이 전달됐다고 한다.
이는 미국을 방문할 때 국경 수비대가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압수하고 검사할 권리를 갖고 있어 이를 경계하기 위한 조치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유럽 관광객과 학자들이 휴대전화나 노트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소셜미디어 글이나 문서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EU의 이번 지침은 중국이나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을 방문할 때와 같은 수준으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과 EU 관계가 얼마나 악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고 FT는 짚었다.
이 밖에도 EU 집행위 관계자들은 비자가 자국 여권이 아닌 '라세파세'(laissez-passer·EU가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에게 발급하는 여권) 서류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미국을 갈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억지 주장을 하면서, EU산 수입품에 20%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등 EU와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한 관계자는 "미국이 EU 집행위 시스템에 침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고, 다른 관계자는 "대서양 동맹은 끝났다"고 말했다.
루크 반 미델라르 브뤼셀 지정학연구소 소장은 EU의 이번 지침이 놀랍지 않다며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는 아니지만 자국의 이익과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초법적 수단을 사용하기 쉬운 적대적 행위자"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2013년 오바마 전 행정부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의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일을 언급하며 "민주당 정부도 동일한 수법을 쓰기에 이번 조치는 EU 집행위가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EU 집행위는 최근 미국 방문에 대한 보안 지침을 업데이트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일회용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은 서면으로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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