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종전 협상 등을 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장소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목하면서 트럼프와 사우디 간 밀월 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종전 협상과 관련한 푸틴과의 통화를 언급하면서 "궁극적으로 대면하기를 기대한다"며 "그도 여기(미국)에 올 수 있고 나도 그곳(러시아)에 갈 수 있지만 아마도 (자신의 재집권 이후) 첫 대면은 사우디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가 중동 내 전통적인 미국 우방국이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의 관계는 그러한 수준을 넘어선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 시절부터 사우디 왕실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사업적 성취를 이뤄왔는데, 특히 2017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급속도로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가까워졌다.
통상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해외 방문국으로 영국이나 캐나다 등 동맹이나 인접국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트럼프는 2017년 첫번째 임기 당시 사우디를 가장 먼저 방문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20일 2번째 임기를 시작한 날에도 사우디의 미국 상품 구매 확대를 전제로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사우디를 가장 먼저 방문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2018년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배후로 빈살만 왕세자가 지목되며 국제적인 비난이 고조됐을 때도 꿋꿋하게 사우디를 엄호했다.
이와 달리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카슈끄지 사건 등을 문제삼아 양국 관계가 냉랭해졌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아 바이든이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에 석유 증산을 요청했을 때는 오히려 감산 결정이 내려지며 바이든을 당혹하게 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가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 가속으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특히 트럼프로선 이슬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를 통해 중동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 어떻게든 사우디와 밀착 행보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미국은 가자지구 전쟁 등 골칫거리인 중동 긴장 해결을 위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 수립 등 관계 정상화를 핵심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는 이달 말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사우디 국부펀드 주최의 전 세계 금융인 및 기술 임원 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에 BBC는 사우디에서 트럼프-푸틴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푸틴 역시 사우디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우디는 트럼프와 푸틴의 협상 중재에 적임일 수 있다. 러시아는 OPEC이 아닌 주요 산유국으로, 국제 유가 등을 고리로 소통이 이뤄져 왔다. 사우디는 미국과 멀어진 바이든 행정부 시절 러시아와 급격히 가까워졌고, 지난해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에도 가입했다.
사정이 이런 만큼 빈살만 왕세자는 이미 지난해부터 미국과 러시아 간 수감자 교환 협상을 중재해 오고 있다. 최근 러시아 감옥에 수감된 미국인의 석방 과정에도 빈살만 왕세자와 러시아 국부펀드인 직접투자펀드(RDIF) 최고경영자(CEO)가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7월에는 사우디와 튀르키예 등의 중재로 러시아 포로와 우크라이나 병사들을 교환한 적도 있다.
미러 정상회담 관여 등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의 사우디 역할 부상과 관련해선 트럼프의 '스트롱맨'(권위주의 통치자) 선호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또 다른 스트롱맨인 푸틴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한 톱다운 종전 협상을 계획하는 트럼프가 중동의 스트롱맨 빈살만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스트롱맨인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서도 노골적인 편향성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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