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의 100년 만에 가장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했다. 스리랑카, 미얀마 등 최빈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이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에 기본적으로 10%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 불균형이 가장 큰 약 60개 국가에 대해 그보다 높은 최대 50%의 관세를 매긴다.
세계 최대 경제국 미국이 모든 국가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며 트럼프는 미국의 황금기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관세 전쟁을 격화시키고 미국 경기침체를 유발하며 트럼프의 정치적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 행사에서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천명하며 새로운 관세 정책을 내놓았다. 기본적으로 모든 다른 국가들이 미국으로 보내는 제품에 최소 10% 세금을 부과하고 최악의 위반국으로 분류한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더 높은 '상호적' 관세가 적용된다.
백악관 문서에 따르면 중국은 34%, 유럽연합은 20%, 베트남은 46%의 관세가 부과된다. 일본 24%, 한국 25%, 인도 26%, 캄보디아 49%, 대만 32% 등 다른 국가들도 더 높은 관세를 부과 받는다. 주로 원자재, 의류, 농산물 수출에 의존하는 최빈국들도 예외는 아니다. 캄보디아는 49%, 베트남은 46%, 스리랑카는 44%, 지진 피해를 입은 미얀마는 40%의 관세를 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보다 '할인'해줬다며 "친절한 상호 관세"라고 자평했다. 트럼프는 관세 정책을 통해 보호주의로 전환하고 미국 제조업을 되살리며 관세 수입으로 수 천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제시한 관세 수준에 다른 국가들의 보복은 거의 불가피하고 무역전쟁이 격화할 위험을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더 커졌다. 뉴욕 증시 정규장 마감 이후 발표된 트럼프 관세에 나스닥 선물 지수는 2% 넘게 떨어지기도 했다.
특히 보편 관세 10%는 일종의 상한선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일각의 기대를 일축한 것으로 많은 국가들이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 관세율에 직면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실효 관세율은 앞서 트럼프가 부과한 추가 관세 20%에 34%가 얹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54%다. 이마저도 기존 관세에 추가되는 것이다.
트럼프 관세는 수조 달러의 상품 가격을 인상하는 역사적 도박이 될 수 있다. 관세로 공급망은 불안정해지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미국 소비자들은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수많은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라고 해도 주요 부품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일정 부분 가격 인상 압박이 불가피하다.
이는 트럼프에게 정치적 자충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관세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빠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미국 경제의 구조조정을 통한 이익은 실현되기까지 수년 이상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기대처럼 미국 바깥의 기업들이 미국 내 공장 설립 등으로 응답하려 해도 이는 수 년이 걸리는 일이다.
관세 충격은 미국 내 상품의 가격 상승을 거쳐 소비 위축을 불러 일으키고, 이는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인다. 트럼프 관세는 미국을 배제하는 새로운 동맹을 형성하도록 부추기는 보복으로 이어져 전 세계가 무역전쟁에 휩싸일 수 있다.
픽셋 자산운용의 수석 전략가인 루카 파올리니는 "해방의 날은 보복의 날로 이어질 것"이라며 "광범위한 관세로 인해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불법 이민자 추방이나 연방 공무원 대량 해고 등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급진적인 정책들에 더해 관세 충격이 기업들을 강타할 경우 고용 시장의 타격도 우려된다.
보복관세는 수출에 타격을 입을 미국 기업들은 이를 수출가격 인하로 감수하거나 인력 구조조정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야 한다. 반대로 원자재 수입 가격이 오르면 이를 미국 내 판매 가격에 전가하거나, 이를 피하려면 비용 절감으로 자체 해결해야 한다.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연은)의 토마스 바킨 총재는 관세로 인해 기업이 가격 인상 대신 비용 절감에 나서면 노동시장에 위험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