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신임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무시하고 베네수엘라 갱단원들을 추방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가운데, 해당 판결을 내렸던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의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는 행정부의 명령 불복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20일(현지시간) 정오까지 자세한 비행기 일정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보스버그 판사는 법무부에 이날 정오(1600 GMT)까지 추방 항공편의 자세한 이·착륙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거나, 행정부가 민사 소송에서 민감한 국가 안보 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국가 비밀 원칙'을 발동하고 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보스버그 판사는 다만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앞서 이미 사회관계망(SNS)에 자세한 비행기 일정을 게시했던 만큼 '국가 비밀 원칙' 적용 가능성은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보스버그 판사는 법무부가 원할 경우 자세한 항공편 일정을 대외 비공개 전제로 법원에만 제공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5일 불법 이민자 수백 명을 비행기 3대에 태워 추방했는데 보스버그 판사는 베네수엘라 국적자 5명이 낸 '집단소송 청구 및 인신보호영장 신청'을 심사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며, 추방 일시 중지 명령을 내리고 비행기를 돌릴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비행기들은 예정대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에 도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후 보스버그 판사가 명령을 내릴 때쯤 두 항공기는 이미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판사의 서면 명령이 내려졌을 당시 항공기가 이미 국제 해역을 통과하고 있어 명령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보스버그 판사는 항공기 자체가 미국의 영공 밖에 있더라도 항공기 운항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공무원에는 명령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보스버그 판사가 구두명령을 내린 16일 오후 6시 45분쯤부터 명령이 유효하다고 보는 반면, 백악관은 보스버그 판사의 서면 명령이 공개된 오후 7시 26분부터 효력이 발휘된다고 보는 점도 쟁점이다.
보스버그 판사는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명령을 위반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17일 법무부 변호사를 심문에 출석시켜 추방 항공편들의 출발지·경유지·목표지와 출발·도착 시간 등 기초적 사실관계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으나, 사실상 무시됐다.
이후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보스버그 판사를 '좌파 미치광이 판사, 말썽꾼, 선동가'라고 비난하며 그의 탄핵을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백악관은 이어 19일 판사들이 행정권을 '찬탈'했다고 주장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극좌파가 조직적으로 분명히 '민주당 활동가'로 행동할 판사를 임명해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통령이자 우리나라 최고 경영자의 의지를 찬탈할 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의 의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판사는 18일 이례적으로 "탄핵은 사법 판결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하기에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것이 2세기 이상 확립되어 왔다"면서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상적인 항소 심사 절차가 존재한다"며 백악관에 맞섰다.
보스버그 판사는 이날 "트럼프 행정부가 판사의 추방 일시 중단 명령을 위반했을 경우 후과(後果)를 물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자세한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미 법원의 명령이 사실상 무시된 상황이어서 미국 내 법조계와 비판자들은 헌법적 위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헌법상 행정부와 사법부는 동등한 권한을 가진 독립된 정부 기관이다.
alicemunr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