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2022년 7월 프랑스 서남부와 이베리아반도 일대 폭염 산불이라는 겹악재에 700㎢ 면적이 불에 탔습니다. 국제부에서 외신을 통해 이 같은 소식을 전하던 당시 심정은 안타까움보단 안도감이 컸습니다. 그저 바다 건너 먼 나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또다시 대형 산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번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였습니다. 2022년 유럽 산불에 비하면 피해 면적은 164㎢로 작지만, 긴 가뭄과 낮은 습도 그리고 시속 160㎞에 달하는 '산타아나 강풍'으로 불길은 24일 만에야 진압됐습니다.
LA는 미국 내 가장 큰 한인사회를 형성한 지역인 만큼 국내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습니다. 그럼에도 대중들에겐 '화마와 싸우다 5일 만에 주인 품에 안긴 반려견'에 대한 감동 실화만 크게 회자됐던 것 같습니다.

반려견 감동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국내에도 대형 산불이 닥쳤습니다. 시작은 지난 22일 서울에서 동남쪽 280㎞가량 떨어진 경북 의성군입니다.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국내 상황이다 보니 사회적 주목과 관심이 높을 줄 알았는데 초반에는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최초 산불이 발생한 지난 주말 여론은 대통령 탄핵 찬성·반대 집회에 쏠렸습니다. 이후 서울 강동구 싱크홀 사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 2심 무죄 선고로 옮겨갔습니다.
사회적 관심도가 떨어진 상황 속에 의성 산불은 5일 만에 인근 5개 시·군 지역으로 확대됐습니다. 27일 기준 피해 규모는 300여㎢로 역대 최대입니다. 통일신라시대의 고운사는 화마 속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인 안동하회마을과 병산서원도 위기라고 합니다.

산불 규모가 커지면서 서울에 사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산불 관련 소식까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울주 언양에서 축산업을 하시는 부모님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친구의 속사정, 서울에서 소방관 지인의 화재 현장 파견 소식 등입니다.
외신으로만 접하던 산불 피해가 이같이 피부로 와닿는 데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나 먹고살기 바쁜데 누굴 걱정하느냐"는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이 같은 국가적 재난 사태의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의 부재는 큰 비극입니다. 앞선 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고 선제 대응에 나섰어야 할 정치권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태와 이 대표 항소심에만 몰두하다 뒤늦게 수습에 여념 없는 모습입니다.

산불 원인은 기후적·환경적 요인이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인간의 노력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가장 큰 산불 원인은 '사람의 부주의'였습니다. 불법 소각, 실화(失火) 등입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는 국민적 세심함이 요구됩니다. 의성 산불 원인 역시 성묘객 실화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성묘객이 무심코 버린 불씨가 평균 시속 8.2㎞ 태풍급 건조한 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작은 실수가 큰 산불을 낸다"는 산림청 경고처럼 작은 노력이 큰 재난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전 국가적 믿음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산불처럼 내일은 예보에 없던 단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younm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