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송=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산불이 휩쓸고간 주왕산 자락에 '끼익끼익'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공기가 맑아 한때 '산소카페'라 불리던 청송은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원형 톱이 나무 속을 파고들 때, 수액과 목재가 톱날과 부딪히며 나는 '숲의 비명'이다. 윤주홍 국립공원연구원 박사는 "나무의 수령과, 어디까지 탔는지 내화(耐火, 불에 견딤)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7일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국립공원 내 산불 피해상황에 대한 기초 조사에 착수했다. 생태학 석·박사급 전문인력 67명이 전문 장비를 메고 지리산(20명)과 주왕산(47명)에 투입돼 훼손 상태를 조사하고 있다. 향후 복원을 어떻게 해야할지 구상하는 일종의 '손해 사정' 첫 단계다.
국립산림과학원 국가산림위성정보활용센터 등에 따르면 지리산은 260ha, 주왕산 3260ha가 피해를 입은 걸로 파악됐다. 피해조사반은 심각도에 따라 '경미' '심각' '매우 심각'으로 분류하고, 생태계로 피해 현황 조사를 확대하는 향후 '정밀조사'의 기반 자료로 활용한다.
'괴물 산불'이 꺼진 주왕산은 곳곳이 그을렸다. 일부 지역은 봉우리가 통째로 타버렸고, 어떤 곳은 마치 원형 탈모처럼 군데군데만 타 흔적이 남았다. 산불이 능선을 따라 부는 강풍에 '불 벼락'처럼 번진 곳이 있는가 하면 수종(樹種) 차이 때문인 곳도 있다.
"산불이 휩쓸고 가면 소나무 등 침엽수는 다 죽는다고 보면 됩니다. 주왕산은 35%가 침엽수, 나머지는 대부분 활엽수가 심어져 있습니다. 수분을 많이 머금은 활엽수림이 그나마 산불의 방어선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명현호 국립공원연구원 기후변화연구센터장은 불에 그을린 소나무와 비교적 쌩쌩한 활엽수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황폐해진 산불 피해지가 산림의 형태를 갖추는 데는 최소 10년, 생태적 안정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최소 100년 이상이 걸린다. 축구장 4900개에 해당하는 조림지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복구에는 수십 년이 걸릴 전망이다.
숲은 타면서 이산화탄소를 내뿜었고, 동시에 탄소를 빨아들일 숨구멍을 잃었다. 자연의 손실은 곧 기후위기의 가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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