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윤다정 홍유진 기자 = 자연인 신분으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 첫 공판에 출석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약 1시간 22분에 걸쳐 재판부 앞에서 직접 '12·3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형사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이 변호인 조력을 받아 공판 중 직접 발언을 자제하는 것과는 다른 이례적 행보다.
이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이 형사재판의 쟁점을 정치적인 방향으로 이끌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과, 법조인 출신으로서 스스로 진술권을 행사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분석 등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14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전 대통령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은 약 8시간 20분 뒤인 오후 6시 20분쯤 마무리됐다.
이날 검찰은 오전 10시 5분부터 11시 9분까지 약 64분간 공소요지를 진술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윤갑근 변호사의 짧은 모두진술 직후 마이크를 넘겨받아 오전과 오후 각각 42분, 40분간 직접 진술에 나섰다.
재판부는 오전 재판에서 윤 대통령의 모두진술 도중 검찰이 60여분의 시간을 사용한 것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윤 대통령은 그보다 20분가량 더 긴 82분가량의 시간 동안 검찰 측 PPT를 직접 넘겨 가며 발언을 이어나갔다.
여기에 증인신문 도중, 그리고 재판 마무리 무렵의 돌연한 발언들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이날 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할애된 시간은 총 93분, 1시간 33분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은 언성을 높이거나 말하는 속도가 빨라지는가 하면, 재판장과 변호인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들어가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또한 "증거라는 것도 어느 정도 될 만한 것들을 딱 골라서 던져 줘야 그걸 가지고 인부하든 다투든 할 것"이라며 "이건 (공소장이) 너무 난삽해서 도대체 이게 어떻게 제대로 된 재판이 이뤄질 수 있겠냐"고 사실상 검찰을 겨냥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의 윤갑근 변호사는 이날 공판 종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직접 발언이 사전 논의된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사전에 긴밀히 논의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검찰 모두진술 후에 변호인들의 공소사실 인부가 있을 것이라 예상됐는데, 검찰에서 (진술)하는 내용들이 사실과 많이 다르다고 느껴 대통령께서 제일 많이 아니까 본인이 설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와 같은 모습이 형사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너무나 일반적이지 않다. 상당히 이례적이고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렇게 진행하는 사건치고 잘 되는 케이스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본인이 그렇게 나서게 되면 재판이 법리적인 다툼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며 "변호사들도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하기 위해 자기 사건도 스스로 하지 않고 남에게 맡긴다"고 말했다.
또한 "피고인은 이야기할 때가 정해져 있는데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좋지 않고, 희한하게도 대부분 피고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상 재판에 있어 관계가 크게 없고 오히려 판사를 자극할 수 있다"며 "판사들은 법적 구성 요건에 맞춰서 듣고 싶어 하는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여진다"고 짚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법리 다툼을 차분하게 하기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식으로, 쉽게 말해 정치적인 것으로 (재판을) 풀어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변호사들도 의뢰인에게 끌려다니는 상황일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점쳤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 역시 "피고인이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흔하지 않다"며 "변호인이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공소사실 유·무죄 정도를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례적이기는 하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재판 진행의 유불리만 놓고 보면 변호인이 직접 (진술)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만, 윤 전 대통령 본인이 법조인이니 비법조인이 진술하는 것과는 좀 다를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26년간 검사로 근무한 법조인 출신으로서 재판 진행 과정과 피고인의 권리 등에 관해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 무게를 싣는 시각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 조용현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윤 전 대통령 자신이 사실관계(진술)나 법리적인 주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일 수 있다"며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통상 형사재판에서 본인에게 진술할 기회를 준다. 진술거부권도 있지만 유리한 내용은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맞다"며 "피고인 본인들이 사실관계나 법리적 주장을 잘 말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대부분은 변호사들이 대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헌재에서도 본인이 다 이야기했고, 재판부도 당연히 그렇게 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을까 한다"며 "판사 입장에서 선입견이 생기거나 어떤 특별한 생각을 가지게 될 그런 것(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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