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자 여권 '잠룡'들의 물밑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의식해 당내에서 조기 대선은 암묵적 금기어가 됐지만, 개헌 토론회 개최나 재야인사와 접촉하는 등 사실상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조만간 대선을 위한 공개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 기일 종료를 전후로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당대표에서 물러난 후 재야인사를 만나며 대선 정국을 구상 중이다. 설 연휴 동안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을 만났다. 세대교체 등 정치 현안뿐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의 불확실성 대응 차원에서 외교와 통상 문제도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았을 뿐,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미 여권 유력 후보 중 한 명이다. 계엄 사태 초기 윤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중도층 확장성이 넓다는 평가다. 올해 서울시 화두로 '규제 철폐'를 꼽는 등 의제 중심의 메시지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오는 12일에는 국회에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를 개최한다. 계엄 사태 이후 정치권에서 권력구조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오 시장은 지방정부로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할 전망이다. 윤재옥 전 원내대표가 개회사를 맡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가장 먼저 대선 출마 시동을 걸었다. 그간 페이스북을 통해 의지를 보여온 홍 시장은 최근 신년간담회에서 조기대선 출마를 묻는 질문에 "장이 섰는데 장돌뱅이가 장에 안 나가나"라고 사실상 출마를 선언했다.
홍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자서전 '정치가 왜 이래'를 출간했다. 2020년 1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묶은 내용이다. 이달 중 최근까지의 메시지를 묶어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통상 유력 정치인들은 자서전 출간을 기점으로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혀왔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김 장관은 "조기 대선 출마는 생각한 것이 없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그러나 최근 '탄핵 인용 시 출마하나'라는 질문에 "대통령과 국민에게 예의가 아니다"라고만 답하며 여운을 열어두는 모습이다.
김 장관의 출마 공식화는 탄핵 인용 시점이 될 전망이다. 김 장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국민들이 찾으면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과거 공천심사위원장까지 맡았던 당 중진인 만큼, 당내 우군이 많다"고 전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주자로 거론된다. 현재 원 전 장관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사무실에 매일 출근 중이다. 보수 진영 인사들과 만나며 탄핵 정국에서의 대응책을 고민 중이다. 대통령실과도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 전 장관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낙선한 후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국토부 장관을 맡을 정도로 윤 대통령과 가까운 만큼, 대선 관련 언급은 삼가고 있다. 다만 정치권에선 탄핵 인용 시 주자로 소환될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보고 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대선 출마 의지가 강하다. 유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강하게 비판하며 탄핵에 찬성했다. 당내 '경제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달 방송에서는 "내게 출마 여부를 묻는 것은 필요 없는 질문"이라며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범여권 대선 후보로 분류된다. 이 의원은 지난 2일 홍대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제 대한민국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간다면 끝까지 간다"고 완주 의지를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사실상 대선 체제로 접어든 것과 다르게 국민의힘 내에선 조기대선은 금기어로 치부되고 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조기 대선에 대해선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선 "주자들이 뛸 공간을 당이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탄핵 인용 시 60일 안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연일 '우클릭' 행보를 보이며 이슈를 선점하고 있다.
다만 여권 강성 지지층이 주말마다 탄핵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윤 대통령 '탄핵 기각 가능성'도 주장하고 있어 당 차원에서 잠룡들을 위한 공간을 열어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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