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북한은 18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확인한 한미일에 "비핵화는 철 지난 얘기"라고 받아치며 "맞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식으로 핵 보유를 인정받은 상태에서 군축 협상을 요구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일 외교장관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뮌헨안보회의(MSC)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 대해 반발하는 입장을 냈다.
외무성은 우선 비핵화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볼 때, 실천적으로나 개념적으로도 이제는 더더욱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7년 전 첫 비핵화 협상 때와 달리 자신들이 이미 국제사회로부터 '핵 보유국'으로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핵무기·핵 능력을 보유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이번 한미일의 공동성명이 "무지몽매한 원시인들이 현대인에게 원시사회로 돌아가자고 간청하는 꼴"이라고 규정하며 특히 미국이 "비핵화라는 실패한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현실 도피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외무성은 또 "미국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이 언급에 북한이 앞으로 미국과 대화를 진행할 때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2018년 비핵화 협상 때의 구호로 당시보다 더 고도화된 핵 능력을 보유한 자신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외무성은 '새로운 핵무력 강화' 노선을 계속 견지할 것이라는 입장도 거듭 밝혔다. 이는 지난달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핵물질생산기지와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해 언급했던 것으로, 과거와 같이 '핵 포기'를 전제로 한 협상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날 담화에서 한미일 공동성명을 겨냥하면서도 한·일은 거의 거론하지 않은 채 미국에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 이 역시 자신들의 대화 상대는 미국이며, 핵 협상은 다자 간 협상이 아닌 북미 간 양자협상의 틀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다만 북한은 최고지도자인 김 총비서나 대외 사안을 총괄하는 김여정 당 부부장, 최선희 외무상 등 핵심 당국자가 아닌 익명의 대변인 명의의 담화로 '수위 조절'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북 기조에 대한 '최종 판단'을 보류한 채 향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 싸움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향후 북핵 관련 미 행정부 발언의 민감도에 따라 대응 수위를 상향 조정하며 공세성을 배가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향후 북미 대화의 성공 여부, 북미관계를 판가름할 중대 분수령은 미국의 비핵화 원칙 유지 여부, 방법론적인 유연성 여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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