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갈라서자'며 DMZ에 방벽 세운 北…35년 전엔 180도 달랐다

남북 회담문서 공개…北 우리 군 방어용 장벽에 "민족분열·대결의 상징"
선대는 '동족'이라며 통일 주창…김정은은 통일 정책 전면 폐기

본문 이미지 - 1990년 1월 31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개최된 남북 고위급회담 6차 예비회담 모습 (통일부 제공)
1990년 1월 31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개최된 남북 고위급회담 6차 예비회담 모습 (통일부 제공)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나라 안에 군사분계선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픈데 인공 장벽까지 있는 건 민족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1990년 1월 31일 판문점 통일각. 남북 고위급회담 6차 예비회담에서 북한 측은 우리 군이 세운 방어용 장벽을 세운 것을 '민족의 수치'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남북 적대적 두 국가론'를 외치며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길고 거대한 장벽을 세운 것과는 판이한 태도다.

통일부가 13일 공개한 '제6차 남북회담 문서' 중 '남북대화 사료집 회의록편 제2권'에 따르면 당시 남북은 고위급회담 개최를 앞두고 실무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앞선 다섯번의 예비회담을 통해 본회담의 명칭과 개최 시기 장소 의제, 대표단 구성까지 모두 정해진 가운데 '의제표기 순서'에 대한 합의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돌연 회담과 전혀 관련 없는 '콘크리트 장벽'을 언급하며 비난을 시작했다. 콘크리트 장벽은 우리 측이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군사분계선 일대에 세운 방호벽을 가리키는 것이다.

북측 대표는 "민족분열과 남북 대결을 상징하는 인공적 차단물"이라며 이를 허물고 양측 간 전면 개방을 실현하자고 요구했다. 이에 남측 대표는 "해당 시설물을 갖게된 건 6·25 때 귀측(북한)이 수백 대의 전차를 앞세우고서 기습남침을 해 우리 군이 후퇴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며 부득이한 방어용 방벽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북측은 "6·25가 무슨 북의 탱크의 기습남침이요"라며 "이 발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언성을 높이는 등 회담 분위기를 악화시켰다. 남측은 이런 북측의 태도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행위"라며 회담 절차 논의를 마무리하자고 요청했지만, 북측은 실질적인 대화를 거부했고, 결국 예비회담은 성과 없이 종료됐다.

이는 최근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기조 아래 남북 간 여러 물리적 단절조치를 취한 것과는 완전히 모순되는 모습이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2023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화됐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작년 한 해 동안 DMZ 인근에 거대 장벽을 세운 것을 비롯해 군사분계선(MDL) 주변에 지뢰를 대대적으로 매설하고, 남북을 잇는 경의선 동해선 도로를 폭파하는 등 철저한 단절 조치를 이행했다.

북한은 1990년의 회담에서 남북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같은 과거 북한의 주장은 김정은 총비서가 선대의 노선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본문 이미지 - 1989년 11월 15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개최된 남북 고위급회담 제4차 예비회담 모습 (통일부 제공)
1989년 11월 15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개최된 남북 고위급회담 제4차 예비회담 모습 (통일부 제공)

북한은 1989년 11월 15일 고위급회담 4차 예비회담에서도 남측이 본회담 명칭으로 제안한 '고위당국자회담' 또는 '총리회담'에 반대하며 "우리 인민의 통일 의지가 잘 반영되어 있지 못하고 (같은 나라가 아닌) 나라와 나라 사이 회담에서 일반적으로 호칭되는 명칭이라는 인상을 준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과거와 대비되는 북한의 정책 변화는 집권 10년 차를 넘어선 김정은 총비서가 점차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통치이념을 내세우는 과정에서 도출된 것으로도 풀이된다.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는 남북관계에 얽매이기보다는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통일론을 과감히 버리고 자신이 제시한 '인민대중제일주의' 아래 실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노선을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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