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산업계의 긴장감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미 관세 폭탄을 맞은 자동차와 철강업계는 물론, 직·간접적 영향권에 든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군도 '플랜 B'를 모색하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4월 2일 전 세계 국가들의 대미 관세와 비관세 무역장벽을 고려해 '상호관세'를 발표할 방침이다.
미국이 상호관세를 공식화하면 미국과 통상하는 모든 국가는 불가항력으로 '무역 전쟁'에 휩쓸리게 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였던 자동차, 쿼터제(할당제) 적용을 받았던 철강은 25% 관세가 확정된 상태다.
여기에 추가 상호관세(+α) 리스크까지 불거졌다. 금융권은 관세 20~25% 부과 시 현대·기아차 영업이익이 19%에서 34%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한다. 포스코·현대제철(004020) 등 철강 업계는 글로벌 업황 둔화와 저가 수입산 철강 유입으로 수익성이 이미 크게 저하된 상태다.
반도체 업계는 대미 수출 비중(지난해 기준 7.5%)이 타 국가보다는 낮은 편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반도체에 최소 25%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한 만큼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는 조립과 가공을 위해 대만 등 다른 나라를 거쳐 미국에 수출되는 경로를 거치는데, 품목 관세(25%)와 상호관세의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에 따라 반도체가 직·간접적인 관세 영향권에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관세 타깃'이 되면서 배터리와 가전 업계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는 멕시코에 TV·냉장고·세탁기 등 가전 공장을 두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포스코퓨처엠(003670)·에코프로비엠(247540) 등 이차전지소재 업체는 북미 최대 핵심 광물 생산지인 캐나다에 진출한 상태다.

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시나리오별로 검토하며 '플랜 B'를 모색하고 있다.
먼저 현대차그룹은 지난 24일(현지 시각) 역대 최대 규모인 210억 달러(약 31조 원)의 초대형 투자 계획을 선물하며 자체적인 관세 협상에 나섰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진출한 이래 투자한 총액(205억 달러)을 넘은 규모다.
철강업계는 25% 관세가 붙는 대신 수출 물량에 제한이 없어진 점을 이용한 저부가 철강재 박리다매를 노리는 전략을 고민 중이다. 현지에 제철소를 세워 북미 물량을 돌리는 방안(현대제철)도 검토한다. 포스코는 미국에 '상공정' 분야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고,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계획한 상태다. 양사 모두 4월 2일 트럼프 행정부의 발표를 검토한 뒤 향후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가전 업계는 생산 거점을 미국 현지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19일 "미국 테네시 공장에 냉장고, 오븐 등을 생산할 수 있도록 부지 정비 작업이나 가건물을 올리는 작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황태환 삼성전자 생활가전(DA)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도 28일 "다양한 공급망을 준비하고 있어 변화하는 관세 정책에 적기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산업계는 정부 차원의 대미 협상에 속도를 내달라고 호소한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최근 경제 6단체장들을 만나 "모든 조치를 민간과 경제단체와 힘을 합쳐 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총리는 4월 초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 총수와도 회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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