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이번 주 한국과 미국의 재무·통상 수장들이 워싱턴DC에서 '2+2 회의' 형식으로 관세 등 주요 통상에 대해 협의한다. 본격적인 협상 개시를 앞두고, 양국이 접점을 모색하는 사실상 첫 대면 테이블이다.
우리 정부는 일정을 공개하면서 '협상'(negotiation)이 아닌 '통상 협의'(Trade Consultation)라는 표현을 택했다. 이번 자리에서 구체적 요구 조건을 주고받기보다 안건별 의견을 조율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는 미국이 방위비 문제를 포함한 이른바 '원스톱 쇼핑'식 통상 압박을 가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한국 정부가 방어적으로 접근 중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이번 주 중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워싱턴DC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 통상 협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다만 세부 일정과 안건은 아직 조율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일정과 의제를 최종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 부총리와 안 장관의 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유력한 협의 일정은 24일 또는 25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일정 공개 메시지에서 양국이 '통상 협의'(Trade Consultation)를 연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직 각자 요구 조건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거나 주고받는 공식 협상(negotiation) 국면이 아님을 자연스레 드러내려는 용어로 풀이된다. 민감한 통상 분쟁 사안인 관세 문제로 곧장 접근하기보다, 우선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다는 해석이다.
안 장관은 앞서 방송 인터뷰에서 통상 협의에 임하는 자세와 관련해 "섣불리 협상을 타결하기보다 양국이 짚고 넘어갈 사안들을 계속 상호 호혜적으로 풀 수 있도록 협의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일각에서는 (협상) 카드를 이번에 다 풀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 다 푼다고 상황이 정리되는 것이 아닌 만큼 정말 중요한 양국의 산업 협력 틀을 중장기적으로 공고히 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협의가 미국 측의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고율 관세 부과에 따른 중국의 거센 반발, 미 국채 투매, 미 증시 급락, 미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 등 복합적인 악재에 직면해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5개 최우선 협상국으로부터 고강도 통상 정책의 성과를 도출할 필요성이 커졌다.
협의가 1주일 내에 열림에도 공식 의제가 확정되지 않은 것은, 무역 균형과 액화천연가스(LNG) 투자 참여 등 핵심 의제 외에도 미국 측이 방위비 등 안보 이슈를 거론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통상 협상에서 방위비 문제까지 포괄하는 '원스톱 쇼핑' 방식을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통상과 안보를 분리하는 '투트랙'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방위비 문제가 이번 협의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과 관련해, 이날 안 장관은 "이 경우 미국 측 입장을 관계 당국에 전달하고, 소관 부처가 이에 대해 협의하거나 향후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협상보다 '협의'에 방점을 찍은 것은 미국과 최초로 협상을 타결한 국가가 오히려 손해를 크게 볼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도 한미 통상 협상에서 성급한 타결 의지보다 신중한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가장 최초의 협상 타결국이 되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한지, 아니면 다른 나라와 협상 결과를 보고 전략을 짜는 지연 전략이 유리한지 논의를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첫 협상 타결 국가가 되는 경우 많은 걸 양보해야 할 것"이라면서 "최초 협상 타결국과 30번째 타결국 사이에는 언론 노출도나 대중 주목도 등에서 큰 차이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한미 간 통상 문제의 해소가 지연되는 만큼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 심리 회복이 늦춰지면서 이미 연 1% 초반으로 전망되는 올해 경제 성장률이 더욱 꺾일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이 속도 조절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기업 피해가 확산하지 않는 선에서 적정선의 속도는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부연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