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이정현 나혜윤 김승준 기자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다음 주 본격적으로 시작될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원하는 '관세율 인하'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속도'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폭에 발을 맞추기보다, 여타 국가와 미국의 협상 과정을 주시하면서 꼼꼼한 대응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희대 서정건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5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다음 주 시작되는 한미 고위급 관세 협상에 대해 "일단 다른 나라와의 협상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 교수는 "가장 최초의 협상 타결국이 되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한지, 아니면 다른 나라와의 협상 결과를 보고 전략을 짜는 딜레이 전략이 유리한 가는 논의를 더 해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첫 번째 협상 타결 국가가 되는 경우에는 굉장히 많은 걸 양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첫 번째 타결 국가와 30번째 타결 국가와는 정치적 언론 노출도나 대중적 주목도 등에서 큰 차이가 날 것"이라며 "10번째로 (협상)순서가 넘어가면 트럼프가 하는 얘기의 반향성도 떨어지게 될 거고, 단순 기술적인 수사 정도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확고한 초기 협상 의지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오히려 협상이 뒤로 밀릴수록 얻을 이점이 더 많을 것으로 관측했다.
한국무역협회 한아름 수석연구원도 "급하게 가면 오히려 상대적으로 협상테이블에서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며 속도조절론에 힘을 보탰다.
한 연구원은 다만 "기업 피해가 확산하지 않는 선에서 적정선의 속도는 유지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는 신속한 협상을 통해 유리한 결과를 이끈 적도 있다.
당시 미 정부가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해외 국가들에 고율 관세 압박을 가하자 한국 정부가 가장 먼저 통상 협상에 나섰다. 한국은 픽업트럭 관세 철폐 시한을 2021년에서 2041년으로 20년 연장하는 정도만 양보했을 뿐 한·미 FTA를 큰 틀에서 지킬 수 있었다. 반면 뒤이어 협상에 나선 캐나다·멕시코는 한국보다 더 많이 내줘야 했다.
하지만 이번 관세 협상의 경우 90일 간 미국이 70여개국을 대상으로 개별 협상을 일일이 진행해야 한다. 첫 협상은 본보기적 성격이 강한 만큼 미국의 최대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을 우선협상 대상국으로 올린 것도 이를 고려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이 서두르는 감이 있는데, 한국과 같은 동맹국과 먼저 (미국 측에)긍정적인 협상을 마치고, 이를 토대로 그 외 국가와의 규범으로 삼을 생각이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장 원장은 "한국 정부도 미국의 이런 속내를 알고 발맞춤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5개 국가와의 우선협상을 예고하면서, 신속한 협상이 득(得)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 장관도 지난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지난주 베트남, 오는 16일에는 일본, 다음 주에는 한국과의 협상이 있다"며 "(협상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맹국들엔 '먼저 움직이는 사람의 이점'이 있을 것"이라며 "보통 가장 먼저 협상을 타결하는 사람이 최고의 합의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미국이 관세 부과 명분으로 삼은 무역불균형 해소 대책과 비관세장벽 해소, 방위비 분담 논의까지 포함한 '범정부 패키지'를 마련해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로드맵에는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확대와 원유·농산물 등의 구매를 늘리는 방안, 자동차·반도체 등 주요 기존 수출 제품의 미국 현지 생산화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미국이 FTA 체결국인 한국에 상호관세 부과 명분으로 삼는 비관세장벽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인 관세 협상에 대비해 정부는 안덕근 산업장관을 주축으로 대미 협상단을 꾸리고 있다. 안 장관은 미국이 관세 협상 시점을 예고한 내주쯤 방미 일정을 계획 중이다.
이번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조선업 협력,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무역균형 등 트럼프 대통령과 한 권한대행이 지난 9일 첫 통화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3대 분야가 핵심 의제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역시 범정부 패키지에 포함된 의제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숙원사업이자, 이번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될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이날 한미 첫 실무급 화상회의 개최로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한국가스공사와 미 알래스카주 산하 개발 공기업인 알래스카가스라인개발(AGDC) 실무자들은 이날 첫 화상 회의를 갖고 프로젝트를 논의했다. 앞서 지난달 25일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의 방한을 계기로, 그간 양쪽이 이메일·전화 통화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다가 최초로 비대면 회의를 한 것이다.
다만 이날 회의에는 산업부와 미 상무부 등 정부 부처 인사들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첫 회의인 만큼 사업 참여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고, 향후 실무선에서 필요시 소통하자는 데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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