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4명 살리고 하늘로 떠난 40대 사회복지사, 3명에 새 선물을 전한 60대 아버지, 6명을 살린 30대 두 아이 엄마, 5명에 생명을 준 11세 여아…" 어느 때보다 따뜻한 이야기가 뜸한 요즘, 장기기증자의 숭고한 생명 나눔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불의의 사고나 질병에 의한 뇌사자 1명이 세상을 떠나기 전 최대 8명의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장기기증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나눔으로 꼽힌다. 기증자 가족의 큰 결심을 전제로 수혜자에게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일이다.
국내 장기이식에 대한 의료 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1945년 각막 이식 성공을 시작으로 1969년 최초 신장 생체 이식, 1979년 최초 뇌사자 신장 이식 등 기록을 세우며 꾸준히 발전해 왔다.
그러나 장기기증자 수는 정체된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의정갈등에 따른 의료공백 장기화로 13년 만에 기증자가 400명을 밑돌았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27일 "지난해 뇌사 장기기증자가 397명"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2017년 515명으로 감소한 뒤 코로나19 유행을 겪게 되면서 2022년 405명까지 줄었다. 2023년 483명으로 다시 반등했으나, 1년 만에 17.8% 줄었다.
의료계에선 1년간 이어진 의료공백이 기증자 감소와 연관됐다고 보고 있다. 뇌사 판정 전후 가족과 상담 등으로 기증 동의가 가능한데, 관련 인력이 전공의 업무도 메우느라 소진됐다는 분석이다.

기증자 뇌사 추정자 접수 건수는 2023년 2921건에서 지난해 2986건(잠정치)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기증자 수만 감소했다. 반대로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늘어나고 있다. 2023년 5만 1876명이었던 이식 대기자 수는 지난해 5만 4789명(잠정치)으로 5.6% 증가했다.
이식을 기다리다 숨진 사람은 2019년 2145명에서 2023년 2907명으로 1.4배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1514명이 숨졌고, 하루 평균 8.3명꼴이다. 장기 종류별 사망자 수는 신장 6994명(49.4%), 간장 5652명(39.9%), 심장 634명(4.5%) 순이다.
장기이식까지 평균 대기 기간도 늘어났다. 신장 이식을 받기 위해 2019년 2196일을 기다렸다면 지난해 상반기 2802일(7년 7개월) 대기해야 했다. 2019년 대비 지난해 상반기 대기 일수가 췌장은 1263일에서 2104일, 심장도 211일에서 385일로 늘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등은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독려하고, 앞으로 기증자를 극진히 예우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2023년 말 기준 178만 3284명이다. 훗날 세상을 떠날 때 장기를 기증한다는 약속의 의미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기증원은 사별 후 애도 과정을 돕기 위해 개인·가족 상담 및 유가족 모임, 추모행사를 진행 중이다. 하늘나라로 간 기증자에게 편지를 보낼 웹 사이트 '하늘나라 편지'를 운영하고 있다.
기증원의 김금재 장기구득코디네이터는 "일반인 분들께서 일부 매체 등을 통해 장기기증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나눔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 코디네이터는 "희망 등록을 했다고 무조건 기증이 가능한 게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본인 의사를 물어봤다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기증 유가족께는 생명나눔이라는 힘든 결정을 하신 데 대해 항상 감사할 따름"이라고 첨언했다.
기증원 홍보대사이자, 지난 2018년 5월 심장이식을 받은 수혜자인 방송인 오수진 씨도 "현재 장기기증은 뇌사에 이른 뒤 진행되니 기증 및 이식에 있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오 씨는 "소중한 사랑을 받아,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을 많은 분께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본다"며 "많은 분께서 장기기증은 사람을 살릴 행동이자 마지막으로 타인에 베풀 사랑이라고 아실 수 있게 여러 홍보활동을 펼치겠다"고 전했다.
ksj@news1.kr
편집자주 ...어느 때보다 따뜻한 이야기가 절실한 요즘, 장기기증의 숭고한 사례들이 많은 이에 본보기가 되고 있다. 다만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기증자의 유족들이 명절이면 먼저 떠난 기증자의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고 한다. 이들에게 자긍심을, 이식 대기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방안은 없을지 <뉴스1>이 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