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 30대 A 씨는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다. 만성피로를 느끼는 탓에 밥 대신 잠을 택하는 편이다. 회사에 도착하면 커피로 잠을 깨운다. 오전 10시쯤 되면 출출해지기 시작한다.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과자를 한두 조각 먹고 나면 점심시간이다. 10분 만에 밥 한 그릇을 다 먹는다. 든든히 먹은 것 같은데 뭔가 부족함을 느낀 A 씨는 달콤한 커피를 사 마시며 사무실로 돌아온다.
어쩐지 A 씨 일과가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당신도 '탄수화물 중독'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공식적인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어서 명확한 진단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정제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대표적인 정제탄수화물에는 백미(흰쌀밥)와 흰 밀가루 제품, 과자류, 초콜릿, 사탕, 시리얼 등이 있다.
남가은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탄수화물 중독에 대해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에 대한 강한 갈망, 탄수화물 섭취 후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과 섭취를 조절하기 어려운 상태, 두통과 피로, 짜증 등 금단증상 등의 특징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서 당으로 분해되는데 탄수화물의 섭취가 과할 경우 당수치를 높인다. 이를 막기 위해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며 금세 배고픔을 느끼고 다시 빵이나 과자 등 탄수화물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뇌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해 음식을 계속 섭취하고 싶은 갈망을 유발해 중독이 심화할 수 있다. 남 교수는 "흔히 '단짠단짠'이라고 하는 달고 짠맛 모두 뇌의 보상센터를 자극해 도파민을 분비하고 식욕호르몬이 달고 짠 음식을 갈망하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탄수화물 중독이 문제 되는 이유는 비만과 대사증후군, 당뇨병, 우울증 등의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남 교수는 "비만과 체중증가뿐 아니라 2형당뇨병과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비알코올성지방간, 심뇌혈관실환, 치아 건강 악화 등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혈당 변동으로 감정 기복 역시 심해지고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못할 경우 세로토닌 호르몬 농도가 저하돼 우울감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젊은 연령층에서 탄수화물 중독과 관련한 문제가 나타날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 탄산음료 등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의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비만 유병률은 남자 45.6%, 여자 27.8%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에서 지속 증가해, 30대~50대 남자 절반은 비만으로 확인됐다.
탄수화물을 무조건 끊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탄수화물은 단백질, 지방과 함께 우리 몸에 꼭 필요한 3대 필수 영양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체 및 두뇌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에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적정 섭취량은 탄수화물 40%, 단백질 40%, 지방 20%로 알려진다.
탄수화물 과잉섭취로 인한 비만과 심혈관질환 위험 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칼로리를 계산하는 방식보다는 당류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오윤환 중앙대학교 광명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지방은 칼로리가 높기 때문에, 그간 의학계에서는 비만 관리 전략으로 열량을 계산하는 '저지방 음식 섭취'를 강조해 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저탄수화물과 저당질 접근이 조명받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개인 상태에 따라 탄수화물의 섭취량을 제한하는 방식도 필요할 수 있지만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식사를 거를 경우 금단 증세로 과식과 폭식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급격한 혈당 상승을 유발하는 당 과잉 섭취를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 교수는 "식사를 거르지 말고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제탄수화물을 통곡물로 대체하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 단백질을 함께 섭취해야 한다. 단순당이 첨가된 음료는 가급적 줄이고 식품 라벨을 확인해 성분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탄수화물의 섭취량을 줄일 경우에는 갑작스럽게 끊기보다는 서서히 줄여야 하며, 충분한 수분 섭취와 규칙적인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등의 생활 습관 개선을 함께 병행하는 것이 도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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