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관세 폭탄을 터트리자 미국 증시가 트럼프 당선 이후 상승분을 모두 까먹는 등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는 그럼에도 4일(현지시간) 양원 합동 연설에서 “미국 경제가 관세로 인해 약간의 혼란을 겪겠지만 국내 산업 부흥을 위한 것”이라며 관세 폭탄을 계속 강행할 것을 시사했다.
그는 "관세는 미국 일자리만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약간의 혼란은 있겠지만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국민을 다독였다.
그는 연설에서 외국 기업을 향해 "관세를 피하고 싶으면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충고했다.
이 대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그가 관세 폭탄을 퍼붓는 진짜 이유가 미국 제조업 부활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시켜 중국을 국제 공급망에서 축출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이 같은 방법으로 중국을 국제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는 것이 패권전쟁에서 승리하는 지름길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를 위해 관세 폭탄으로 증시가 좀 하락해도 참아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한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미국 제조업이 부활하면 글로벌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중 패권전쟁은 기술 패권전쟁이다. 역사 이래 기술 패권을 차지하는 나라가 세계의 패권을 쥐어왔다. 최근 기술 패권전쟁의 최전선이 바로 반도체다.
트럼프는 미국산 반도체로 미국의 인공지능(AI)을 완성하겠다고 말하는 등 반도체 국산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 반도체 업체에 미국에 공장을 지을 것을 강권하고 있다.
미국은 이와 함께 첨단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금지하는 방법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서 반도체 자립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은 중국, 미국, 일본 순이다.
시총 규모로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중화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반도체 자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미국에 공장을 잇달아 짓고 있다.
이런 국면이 몇 년간 지속되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 반도체 기업의 줄도산이 불가피하다. 특히 대중 수출 비중이 높은 미국 반도체 업체의 도산이 잇따를 전망이다. 중국은 내수 시장이 워낙 커 미국보다는 충격이 작을 터이다.
미국 업체가 많이 망하건 중국 업체가 많이 망하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다.
이미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미중 패권전쟁의 틈바구니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대중 수출을 금지함에 따라 한국의 삼성전자는 첨단 제품의 경우, 팔고 싶어도 중국에 반도체를 팔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을 포기할 수도 없다. 세계 최대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제재로 중국이 반도체 자립에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잃게 된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다. 딥시크 충격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의 기술 수출 금지가 오히려 혁신을 촉진, 중국의 기술 자립이 앞당겨지면 그동안 한국이 우위를 누렸던 기술 분야가 하나둘씩 사라질 전망이다.

한동안 한국은 전자, 반도체, 조선 분야에서 중국에 기술 우위를 누리는 한편 인건비가 싼 중국을 제조기지로 만들어 호황을 구가했었다.
그러나 미중 패권전쟁이 시작된 이후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급격히 줄고 있다. 미중 패권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류'라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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