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그게 왜 논쟁거리인지 모르겠다."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돌아온 김도영(22·KIA 타이거즈)은 어떤 타순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특별히 선호하는 타순이 없고, 그저 팀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어느 위치든 상관없다는 그였다. 반대로 말하면 어느 타순에 둬도 기량을 펼쳐 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도영의 자신감과는 별개로, 김도영의 타순은 KIA에 있어 중요한 '결정'인 것이 맞다. 김도영은 지난해 30(홈런)-30(도루)에 최우수선수(MVP)까지 받았다. KIA를 넘어 리그 최고의 타자였기에, 그의 능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곳에 배치해야 전체 타선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팀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이라고 한 김도영 본인의 말에 이미 답이 있는 셈이다.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찾기 위해, 어느 타순이 적합한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강타자=4번" 공식은 옛말…강한타자 '전진 배치'가 대세
지금껏 야구에서 4번타자는 '강타자' 혹은 '홈런타자'로 통했다. 장타력을 갖추고 찬스에서 해결해 줄 능력이 있는 타자를 4번에 배치하는 게 상식에 가까웠다.
'강타자'의 배치는 한동안 3번에 이뤄지기도 했다. 4번은 장타력만을 보는 대신, 3번은 콘택트와 장타력, 출루율을 두루 갖춘 타자의 자리였다.
이런 관점의 타순에선 그 앞에 1-2번은 장타력보다는 출루율과 작전 수행 능력이 우선시 됐다. 팀에서 가장 강한 타자 앞에 주자들이 나가야 득점 확률이 높아진다는 취지다.
1-2번을 '테이블 세터'로 부르고, 3-4-5번 타자를 '클린업 트리오'로 명명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타순에 대한 관점이 변하고 있다. 통계적인 접근이 가능한 세이버 매트릭스가 보편화되면서, '수학적으로' 더 많은 점수를 내기 위한 방법이 분석되기 시작했다.
이에 '강한 타자'를 1-2번에 배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세이버매트릭스에선 '클래식 스탯'인 타율-타점보다는 홈런, 출루율과 장타율 등이 더 중시되는데, 이에 따르면 가장 잘 치는 타자가 한 번이라도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서는 것이 팀에 이득이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 메이저리그에서도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가 1번타자를 맡는다. 그는 지난해 54홈런-59도루를 기록했고, 1번타자로 나서면서도 130타점을 올렸다.
KBO리그에서도 지난해 32홈런 112타점을 올린 멜 로하스 주니어(KT 위즈)가 1번 타자로 나섰다. KT는 올해 또 다른 홈런 타자 강백호를 1번에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작년 '3번 김도영'은 해피엔딩…올해 최적의 타순은?
작년 김도영은 3번타자로 328타수, 2번타자로 149타수, 1번타자로 63타수에 나섰다. 3번으로 0.341, 2번으로 0.336, 1번으로 0.429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어디서든 잘했다.
이범호 감독은 시즌 중반 이후 김도영을 3번에 고정했다. 부진하던 외인 소크라테스 브리토를 전진 배치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고, 박찬호 역시 1번에서 제 몫을 해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김도영의 3번 배치는 성공적이었다. 김도영 개인이 최고의 성적을 냈고, 이를 바탕으로 KIA 팀 타선 또한 리그 최고의 위용을 자랑하며 통합 우승까지 일궜기 때문이다.
세이버매트릭스가 '대세'가 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를 기계적으로 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데이터를 컴퓨터에 넣고 시뮬레이션을 돌린다면 그게 정답이겠지만, 야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기본적인 기량과 컨디션은 물론, 멘탈적인 부분과 팀 분위기 등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타순 하나를 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범호 감독은 지난해 다른 주장에 흔들리지 않고 '3번 김도영'을 고수했다. 전반적인 팀 공격력을 생각했을 때 3번에 두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올해 캠프를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그 생각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캠프를 다녀와서는 확고한 의지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
이 감독은 "1, 2번 타순의 컨디션이 좋으면 3번에 놔두면서 중심을 탄탄하게 가고, 그렇지 않을 땐 김도영 타순을 올려 앞쪽을 보강할 수도 있다"면서 "(김)도영이의 앞에 있는 타자들, 도영이가 빠졌을 때 중심 타순을 맡아줄 타자들이 어떤 활약을 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외국인 타자가 소크라테스에서 강력한 파워를 가진 패트릭 위즈덤으로 바뀐 것이 생각의 변화에 큰 몫을 차지했다. 중심 타순을 지탱해 줄 타자가 늘어났기에, 김도영을 전진 배치해도 전체적인 타순이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김도영 본인은 타순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는 "선호하는 타순은 특별히 없다. 그저 팀에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고, 시켜주시는 대로 하겠다"며 웃어 보였다.
이범호 감독은 시범경기까지 지켜본 뒤 김도영을 비롯한 팀 타순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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