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혜연 권진영 기자 = 탄핵 정국이 석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는 헌법재판소 앞은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혼돈을 집합시켜 놓은 축소판처럼 변해가고 있다.
여야 정쟁과 폭력이 난무하고 소음과 무질서가 횡행하는 분위기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초 헌재 앞은 탄핵 찬반을 주장하는 1인 시위자들의 공간이었지만 정치권이 여론전을 위해 최근 장외 투쟁에 나서면서 '정쟁'의 무대로 변모했다.
21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종로구 헌재 앞은 이날 오전부터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모인 여야 의원들로 혼잡했다. 비슷한 시간에 양측 기자회견이 겹치면서 헌재 현판 앞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신경전도 벌어졌다.
공간이 비좁은 탓에 양측 인원이 서로 섞이면서 '탄핵 각하'와 '즉시 파면' 플래카드가 혼재되는 모습이었다. 고성이 오가며 맞불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양측의 구호와 발언은 서로에 묻혀 거의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제도권 정치인의 등장과 맞물려 헌재 앞은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심지어 날계란 투척과 '날아차기' 등 돌발적인 폭력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전날 오전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 도중 건너편에서 날아온 계란 세례를 받았고,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전날 오후 60대 남성의 발에 오른쪽 허벅지를 걷어차였다.
경찰은 현장 영상을 분석하며 '계란 투척'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지만 아직 검거되지 않았다. 이 의원의 폭행 신고와 관련해서는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폭력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은 전날부터 헌재 건너편 인도와 정문 인근에 시위대가 모이는 것을 불허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경찰의 강제 해산에 강하게 반발하며 버티다 경찰에 끌려 나가기도 했다.
경찰은 전날 '계란 투척 사건'이 발생한 후 다수가 모여 같은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는 1인 시위를 벗어난 '미신고 집회'로 판단, 강제 해산을 진행했다.
일부 집회 참가자는 이 과정에서 "경찰에 떠밀려 넘어졌다"며 부상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시위대 사이에서는 "중국인 가짜 경찰이 경찰복을 입고 1인 시위자들을 끌어냈다"는 가짜뉴스도 퍼지고 있다.
이날 오후에도 '탄핵 각하'를 외치며 헌재 건너편에 모인 수십 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경찰은 "미신고 집회이니 이동해달라"고 해산을 요청했지만, 시위대는 "왜 좌파는 안 막고 우파만 막느냐"고 반발하며 이동을 거부하고 있다.

헌재 정문 앞 도로 양옆은 경찰버스로 막혔지만 메가폰을 차에 달고 끊임없이 돌아오는 차량에 대해서는 경찰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못했다. "윤석열 구속"이라고 외치는 흰 승용차 운전자에게 경찰이 주의를 준 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탄핵 무효"를 외치는 검은 봉고차 운전자도 등장했다.
시위 차량에 막혀 길이 막히자 뒤차 행렬은 '빵빵'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항의하기도 했다. 직접 소음을 측정한 결과 100데시벨(dB)까지 올라갔다. 헌재 왼편 농성장 앞에서 필리버스터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스피커 소리를 최대 90데시벨까지 키웠다.

헌재 앞 통행은 제한됐지만 돗자리와 천막을 쳐놓고 농성과 단식을 이어가는 시위자들은 남아 있다. 헌재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아 사실상 '무단 점거' 행위지만 천막 농성장에 국민의힘 의원들도 방문해 시위에 동참하면서 '탄핵 반대' 진영의 거점이 되고 있다.
이날 오전 기준 12명이 단식 중인 가운데 근처에는 "극도의 안정을 요하므로 의료진 외엔 출입을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천막 가장자리에서는 중년 여성 한 명이 긴 요가매트를 깔고 '대통령 직무복귀 기원' 1만 배 절을 하고 있었다.
헌재 곳곳에는 쓰레기와 오물이 나뒹굴고 있었다. 헌재 앞에는 '1인 시위 참여자'에게 보낸 택배 비닐봉지도 주인을 잃은 채 굴러다니고 있었고 전날 '계란 투척 사건'으로 떨어져 말라붙은 계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헌재 인근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는 시위자들이 제작한 유인물이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었다. 정문 오른편에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을 반대하며 보낸 화환들이 어지럽게 쓰러진 채 방치되고 있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