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시위 구호를 따라 하고, 밤에 불안해서 잠을 못 자요"(한남초 학부모 김 모 씨)"집회 참석자들이 카페에 와서 '너네 매출 오르니 반갑지 않냐' 기세등등하신데, 반갑지 않아요. 조용한 일상이 파괴되는 게 고통스럽습니다"(한강진역 2번 출구 앞에서 9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김 모 씨)
(서울=뉴스1) 신윤하 이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구속 취소로 석방된 후 한남동 시민들의 일상은 또다시 무너졌다. 윤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잠시 잠잠했던 한남동 일대의 '태극기 부대'가 복귀했기 때문이다. 한남초등학교 학부모들과 주변 상권의 자영업자들은 원색적인 욕설과 소음 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털어놨다.
12일 오전 8시쯤 찾은 서울 용산구 한남초는 등교하는 학생들을 데려다주는 학부모들과 경비 태세의 경찰관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저학년 학생들의 경우 10명 중 7명가량은 학부모가 손을 잡고 데려다 줄 만큼 학부모들이 많이 보였다.
학부모들은 아이가 학교 건물 안까지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는 등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한남초는 지난 7일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이 나오자마자 "등하교 시 교문 앞까지 (보호자가) 동행 바람"이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배포한 바 있다.
학부모 김 모 씨(44)는 윤 대통령 석방 이후 4학년·6학년 자녀들의 등하굣길을 모두 챙기고 있다. 김 씨는 "저희 집 앞에선 우파가 시위하고 있는데, 같이 시위대 옆을 걸어갈 때는 아이들 귀를 막아주기도 한다"며 "시위자들이 욕설하고 거친 말들을 하는 것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한남초에 다니는 자녀들이 극우 집회 구호를 따라 하고, 밤낮으로 이어지는 소음에 불안에 떨며 잠을 못 잔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김 씨는 "아이들이 시위 구호를 따라 하고 노래도 외울 정도"라며 "(윤 대통령 구속 전) 시위 때도 아이들이 불안해서 잠을 못 자길래 제가 같이 잤는데, 이번에 다시 시위가 진행되니 아이들이 또 불안하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손주 2명을 바래다준 김 모 씨(77)는 "요즘엔 안전 때문에 하굣길에도 고학년인 4학년은 그냥 나오는데, 2학년쯤 되는 저학년생들은 부모들이 학교 앞에 와야 아이를 내보내 주더라"며 "집회하는 거 어린애들이 보면 좋겠느냐"고 짜증을 냈다. 한남초로 아이들을 데려다준 30대 여성 2명도 "정치적인 문제보다도 안전이 제일 걱정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하교 시간인 오후 1시 다시 찾은 한남초에선 경찰과 학교 보안관, 용산구청 직원들 및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의 하교를 도왔다. 이날도 한남초 정문에서 150m 떨어진 관저 앞에선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차도를 향해 태극기를 흔들고 집회 무대를 설치했다.
용산구청 직원은 취재진에 "원래 통학 안전 관리는 도로교통과에서 하는데 시위 때문에 위험해서 자원봉사자를 급하게 구했다"며 "1월 초에도 (자원봉사자들이) 했고, 어제부터 다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변 상권의 자영업자들은 매출 타격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크다며 "조용한 일상이 파괴됐다"고 입을 모았다.
한강진역 2번 출구 앞에서 9년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 모 씨(50)는 태극기를 두른 집회 참석자들이 가게를 마음대로 사용하려 하고, '별점 테러'를 했다고 털어놨다. 카페 화장실을 안 열어준 김 씨에게 집회 참석자들은 "이재명을 지지하냐" 묻고 욕설을 쏟아내기도 했다.
김 씨는 "지금도 태극기 부대가 오가는 것만 봐도 정신적으로 힘들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언제 이 시한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함이 있다"며 "자기효능감에 취한 사람들이 집회를 통해 이렇게 많이 모였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울상을 지었다.
2013년부터 카페를 운영한 백 모 씨(43)도 "집회 참석자분께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하니 '내 얘기 들으라고!' 하며 소리를 질렀다"며 "집회에 참석하는 분들이 카페 오시면 일단 카페에 (짐들을) 기본적으로 깔아두고, 뭐라도 일이 나면 '금방이라도 가겠다'며 교대하는 분위기다. 코로나 때보다 탄핵이 최악"이라고 말했다.
집회 소음이 크니 단골손님들은 발길을 끊었고, 가게 앞엔 집회 손팻말 등 쓰레기만 쌓였다. 매출은 떨어졌다. 백 씨는 "평시와 비교하면 매출은 20~30% 정도 줄었다"며 "여기 주변 모두 다 매출이 안 좋다고 하고 오죽하면 병원 매출도 떨어졌다고 한다"고 했다.
18년째 한남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성 모 씨(47)는 "집회하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긴 하지만, 그 사람들은 어차피 떠날 사람들이지 않냐. 우리는 단골손님이 매출의 80~90%인데 이분들을 많이 놓쳤으니 장기적으로 손해"라며 "집회 참석자들이 가게 앞 화단에 쓰레기를 버리고 나니 그걸 일일이 다 치워야 했다. 빨리 선고가 돼야 이것도 끝날 것 같다"고 했다.
카페 사장 김 씨도 "동네 전체가 명동 거리처럼 변했다. 명동에서 노상 방뇨를 하진 않는데, 한남동은 이 일대가 쓰레기통, 화장실이 된 느낌"이라며 "상업지구면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여긴 그런 곳이 아니라 주택가라 매일 오는 사람들이나, 공연 보고 문화적 경험을 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장소인데 시위대 때문에 이 동네에 오기 꺼리는 사람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탄핵 심판 선고일에는 미리 문을 닫겠다는 가게들도 있었다. 김 씨는 "무서우니까 선고 당일에는 문을 닫을 생각도 있다"며 "한창 탄핵 시위를 계속할 땐 밤 되면 살벌해지니 원래 밤 10시 마감인데 오후 6~7시에 문을 닫곤 했다"고 말했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