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윤하 박응진 김민재 기자 = 경찰이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자동 입력 프로그램인 '매크로'를 사용한 여론 조작이 이뤄졌단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평상시의 10배 이상의 접속 시도를 인지한 헌법재판소도 지난 10일부터 매크로 탐지 프로그램을 통한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하며 대응에 나섰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11일 매크로를 사용해 헌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짧은 시간 동안 탄핵 반대 글이 무더기로 올라왔단 의혹과 관련해 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주말부터 매크로 탐지 프로그램을 통한 홈페이지 접속 시도가 포착되자, 지난 10일부터 본격적으로 이들의 접속을 차단시켰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지난 8일 1만 4000여 건이었으나 9일에 16만 건으로 10배 이상 뛰었고, 10일엔 25만 건을 기록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18일부터 대기번호 접속 대기 정책과 매크로 탐지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매크로 탐지 프로그램에 인지된 이들을) 차단시켰더니 매크로 접속이 급감하긴 했다"며 "추가 대책으론 만약 이런 사태가 또 재발할 경우에 대비해, 대통령 탄핵 기간 동안엔 매크로 사용 IP를 차단하는 게 어떻냐는 내부 논의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오후 12시 30분 기준 헌법재판소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게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탄핵 반대' 글은 총 27만180여 건에 달한다.
극우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엔 지난 9일 오후 1시쯤 "손쉽게 등록할 수 있게 스크립트 만들었다"는 내용의 '헌법재판소 자유게시판 탄핵 반대 딸깍으로 끝내기'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글엔 코드를 복사해 북마크를 만들고, 북마크를 세 번 '딸깍'(클릭) 하면 게시판에 글이 자동 등록되는 링크가 기재됐다. 이 글은 1105개의 추천을 받으며 '개념글'로 올라갔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오프라인에서 탄핵 반대 집회에 못 나갈 경우 온라인에서라도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며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을 포함한 지침을 공유했다. 이들은 국회 입법예고 사이트에서 '입법 반대' 의견을 제출하고 기사 '댓글 방어'(댓방)에 나서며 헌재 게시판에서 글을 다수 게시해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실제로 매크로가 등록하게 설정된 동일한 내용의 '탄핵 반대' 글들은 지난 9일부터 이날 낮 12시 30분까지 총 27만189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매크로 프로그램의 사용 방법을 적은 글에서 "등록 내용은 아래 중에 하나 랜덤으로 등록됨"이라고 알렸던 문구 13개가 포함된 글들을 합친 숫자다.
게시물은 느낌표의 개수, 띄어쓰기까지 모두 동일한 '복붙'(복사해 붙여넣기) 글이 대다수로, 매크로 사용 정황이 상당히 짙다.
다만 현재 매크로 프로그램을 공유했던 게시물은 삭제됐고, 해당 매크로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 매크로가 막히자, 헌법재판소 게시판은 정상화됐다. 전날(10일)까지 4000~6000명의 접속자가 몰리면서 사실상 마비 상태였던 헌재 게시판의 접속은 11일 오전엔 원활해졌다.

한편 탄핵을 반대하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매크로를 이용해 헌재 게시판을 포위하고 있단 소식이 알려지자, 탄핵 찬성 측에서도 '헌재 게시판에 시간 날 때마다 글 올리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다음 대형 카페 '여성시대'에선 '저쪽에서 매크로 써서 한다며?', '매크로 어떻게 돌리냐'는 내용의 글들이 게시됐다. 한 사용자는 지난 10일 '공연법, 사이트 약관 위배가 아닌 이상 매크로는 불법이 아니다'라며 자동 입력 문구들과 매크로 사용 방법을 공유했다.
매크로가 자동 입력하게 설정된 '탄핵 찬성' 문구가 포함된 헌법재판소 게시물들은 지난 10일부터 이날 낮 12시 30분까지 총 8648건이 올라왔다. 이는 '여성시대'에서 공유된 '민주주의 훼손 해결, 탄핵 찬성합니다!' 등 12개의 자동 입력 문구가 포함된 글 개수의 총합산이다.
전문가들은 헌법재판소 자유게시판을 포화시키기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까지 동원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형법 제314조는 '정보처리 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해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2018년 매크로를 사용해 네이버의 댓글을 조작해 처벌받은 '드루킹 사건' 당시 일당도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받았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에서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것도 당연히 헌재의 업무의 하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매크로 프로그램까지 돌리게 되면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며 "헌재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데 고의적인 트래픽을 발생시키면 접속이 어려워지니까 그런 것도 일종의 디도스 공격과 비슷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