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심판의 얼굴들]⑪'빌드업 화법' 김형두, 136분간 13명의 진실 물었다

尹 탄핵 심판 동안 증인 13명에게 질문 던져
차분한 말씨로 날카로운 질문 던져 '계엄의 밤' 재구성

김형두 헌법재판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감사원장·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인 탄핵심판 3차 변론준비기일에 자리하고 있다. 2025.1.2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김형두 헌법재판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감사원장·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인 탄핵심판 3차 변론준비기일에 자리하고 있다. 2025.1.2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편집자주 ...1월 14일부터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변론이 2월 25일 종료됐다. 당사자인 윤 대통령은 물론 16명 증인의 발언은 '계엄의 밤'을 재구성, 화제와 파장을 몰고 왔다. 헌법재판소에서 주목 받았던 인물들을 조명한다.

(서울=뉴스1) 김민재 기자 = 2023년 3월 28일 김형두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섰다. 그는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적어 온 글을 읽어 내려갔다.

준비한 글을 읽는 동안 연신 안경을 고쳐 썼다. 안경을 올리는 오른손 엄지에는 파란색 골무가 끼워져 있었다. 여야는 김 후보자의 인사 청문 경과 보고서를 채택했고, 그는 청문회 사흘 뒤 헌법재판관으로 취임했다.

2년 후인 2025년 1월 김형두 헌법재판관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에 참석했다. 그는 변론기일마다 방대한 자료를 들고 헌재 대심판정에 들어섰다. 검은 머리는 희끗희끗해졌다. 오른손의 파란 골무에 더해 왼손 엄지손가락에는 연두색 골무가 자리 잡았다.

말투는 여전히 나긋하고 느릿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날카로웠다. 그는 43일간의 탄핵 심판 동안 증인들에게 차분하게 질문하며 '계엄의 밤'을 되짚었다.

증인 13명에게 136분 동안 질문…'빌드업' 화법으로 허 찔렀다

김 재판관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동안 증인 13명에게 136분 동안 질문을 던졌다. 탄핵 심판 동안 주로 질의를 한 건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정형식 헌법재판관, 그리고 김 재판관이었다.

본론부터 파고드는 문 대행과 정 재판관과는 달리, 김 재판관은 단순한 사실관계 질문으로 물꼬를 텄다.

5차 변론기일에 출석한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는 '11월 9일과 30일에 국방부 장관 공관 모임이 있었죠'라며 질문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9일 모임에 누가 참석했는지, 30일 모임은 실제로 있었는지 등을 물었다. 이날 즉답을 피하던 여 사령관은 짧게 잘라 들어오는 김 재판관의 질문에 답변을 이어갔다.

증인의 처지에 공감하며 질문을 시작하기도 했다. 줄곧 진술을 거부한 이진우 수방사령관에게는 본인과 부하들의 '억울함'을 건드렸다.

김 재판관은 이 사령관에게 "대통령이 법률 전문가고 김용현 장관 지시는 작전 지시로 이해해서 믿고 따른 거잖나"라며 "증인으로서는 굉장히 억울한 상황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또 그는 '3성 장군인 증인이 김용현 장관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항명인가'라고 물어 이 사령관으로부터 '따르지 않으면 항명이라고 장관님이 그때 처음에 말씀하신 기억이 있다'는 대답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결정적 순간에는 허를 찔렀다.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비상 입법기구 쪽지를 보여주며 직접 작성했는지를 물었다.

김 전 장관이 그렇다고 답하자 김 재판관은 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이 왜 필요했는지를 질문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께서 평소에 '정부 여당에서 경제 살리기 법안을 비롯해 100여 건이 거대 야당에 막혀서 정지돼 있는 상태다.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작동되면 국민들의 삶이 훨씬 나아질 텐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런 부분 방안을 강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고 답했다.

이에 김 재판관은 "(쪽지) 아래에 보면 국회 임금과 지원금 등 자금을 완전히 차단한다는 내용이 있다. 증인이 말한 입법을 하려면 결국 국회가 해야 하는데, 이건 국회를 정지시키겠다는 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김 전 장관은 "(국회의) 임금 중 불법 임금이 많다고 얘기 들었다. 인원을 뻥튀기한다든지 해서 나가는 걸 색출해서 차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본문 이미지 -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김형두 헌법재판관이 15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청구 사건에 대한 3회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2025.1.1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김형두 헌법재판관이 15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청구 사건에 대한 3회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2025.1.1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곽종근엔 "진술 거부 한 번도 안 했네"…국정원장에겐 "尹 한가한 이야기 한 것 같다"

증인에 따라 질문 방식과 길이는 천차만별이었다. 가장 긴 시간 질문을 받은 건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었다. 김 재판관은 31분간 조 원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특히 윤 대통령과 조 원장의 통화 내용을 집요하게 물었다.

김 재판관은 "대통령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한테 굉장히 많은 지시를 했는데, 그리고 바로 국정원장한테 전화해서는 참 한가한 이야길 한다"며 "'미국 출장 어떻게 하실래요'(라고 말하는 건) 잘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오후 10시 53분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해 1분 24초 동안 통화하고 10시 55분에는 조 원장에게 전화했다.

조 원장은 10시 55분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예정된) 미국 출장은 어떻게 하기로 했나'라고 묻자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어떻게 가겠느냐고 대답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반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은 "오후 10시 53분에 윤 대통령이 전화해 '이번 기회에 싹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정원에도 대공 수사권을 줄 테니까 우선 방첩사를 도와 지원해.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와'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윤 대통령이 홍 전 차장에게는 긴박한 지시를 내린 뒤 조 원장에게 미국 출장만을 물어본 것이 다소 어색하다는 지적을 한 셈이다.

이에 조 원장은 "그래서 대통령께서 53분에 홍 전 차장에게 그런 얘길 했는지 저는 확신이 없다"며 "홍 전 차장 말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반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는 '구속 기소돼 있는데 오늘 진술 거부권을 한 번도 행사하지 않고 다 이야기했다'며 말을 시작했다. 김 재판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곽 전 사령관은 이날 법정에서 당황하고 긴장한 듯 횡설수설했다. 단어를 혼동하며 진술을 일부 번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 재판관은 자수서를 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곽 전 사령관은 "부하들이 처벌받는 상황에서 사실대로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겠다고 판단했고, 진실을 써놔야 이후에도 기준점이 돼서 안 흔들릴 것 같았다"고 답했다.

김 재판관은 질의하는 내내 손짓을 섞어가며 말을 물었다. 때로는 달래는 듯한 말투로, 때로는 단호한 말투로 허점을 파고들었다.

고개를 잠시 들어 당시 상황을 묘사하거나 말을 늦춰가며 증인의 심경을 재현하기도 했다. 김 재판관의 질문은 항상 '증인'이라는 단어로 법정 건너편에 앉은 사람을 호명하며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유난히도 잘생기고 순한 아이였던 둘째가 자폐 진단을 받고 나서 우리 가족의 생활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하루 종일 둘째를 돌봐야 하는 힘겹고 고단한 생활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경험이 제가 세상을 좀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법관으로서의 자세나 시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이미지 - 김형두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3.28/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김형두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3.28/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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