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는 군 통수권자의 '부당한 명령'은 위법이라는 헌재의 판단이 명시됐다. 비상계엄 사태에 가담한 군 사령관들이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죄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것에 반박 논리일 뿐 아니라 앞으로 군에 적용될 새 가이드라인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헌재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며 국가긴급권의 사용 조건이 아닌 상황에서 계엄이 선포됐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또 과거 군이 정치에 개입했던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 헌법에 명시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군을 동원하고, 동원된 군인들이 시민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은 대통령이 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반하는 군 통수권을 행사한 것으로 위법한 행위라는 것이 헌재의 논리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장성들에게 국회의원의 위치를 확인하고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게 조치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을 침해한 잘못된 군 통수권 행사라고 봤다.
특히 헌재는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봤다. 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를 막는데 군과 시민들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헌재의 결정 논리는 군이 '잘못된' 군 통수권자의 지시는 따르지 않아도 헌법의 가치를 위반하는 게 아니라는 해석으로도 이어질 여지가 크다. 특히 '소극적인 임무 수행'이 군인의 본분을 어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사례를 만든 셈이 된다.
이는 비상계엄에 가담한 군 사령관들이 제기하는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따른 것은 위법한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기각할 논리가 될 수도 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군사법원의 재판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울러 사실상의 명령 불이행, 업무 태만으로 여겨질 수 있는 '소극적 임무 수행 행위'가 오히려 위법한 비상계엄의 이른 해제를 막았다는 논리는 군이 '부당한 명령'은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인간 존엄을 침해하는 명령은 불이행해도 불복종이 아니라고 명시한 독일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정당한 명령의 기준 및 거부권 행사 가능 범위 등에 대한 법적 논의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같은 헌재의 판단이 당장 법 개정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당장 진행 중인 주요 군 사령관들에 대한 재판에서 판결의 논리로 활용될 가능성은 크다. 적극적인 의지로 소극적 임무 수행을 했던 사령관과,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적극적인 계엄 가담 행위를 한 사령관에 대한 양형이 판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해묵은 계엄법의 개정 논의에 불씨를 지피고, 개정안이 반영할 가치 및 논리로도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군 통수권자의 명령이라도 사후에 불법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국내 최고의 유권 해석 기관이 결정문에 명시한 셈"이라며 "상관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강조하고 명령에 대한 판단을 금기시하는 군 내부 문화에 중대한 메시지를 던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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