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에 대한 미국 측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서 한국 측 인사의 잘못으로 인한 '보안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교부에 이어 미국도 보안 사고를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으며 이번 사태는 '핵 무장론', 비상계엄 사태 등 그간 거론됐던 이유가 아닌 보안 문제가 원인인 것으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1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초청 특별 간담회에서 "에너지부 산하에 '수출 민감 품목', 즉 반출이 금지된 품목을 다루는 연구소가 있는데 이곳에 작년 한 해에만 2000명 이상의 한국 학생·연구원·공무원이 방문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온 방문객이 너무 많다 보니 어떤 사건이 있었다"라며 "(한국 측이) 민감한 정보를 잘못 다뤘기 때문에 이 명단(민감국가)에 오른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사대리는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해당 연구소와 협력한 한국 측 인사를 통해 반출 금지 품목이 외부로 유출되는 보안 사고가 발생한 것이 한국이 민감국가에 포함된 이유라는 설명으로 보인다.
이날 윤 대사대리가 미국의 입장을 설명한 것은 국무부나 에너지부가 행정부 명의로 나서 대응하는 것이 이 사안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윤 대사대리는 "이번 조치는 에너지부 연구소 내부에 국한되는 것이며, 한국 정부의 정책 관련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인공지능(AI)이나 생명공학 협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임을 명확히 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이 '국가 대 국가'로서의 교류에 부정적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미국이 행정부가 아닌 주재국 대사로 스피커를 낮춘 것도 이번 사안이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메시지와, 한미의 연결고리인 주재 대사가 나서 '성의 있는' 설명을 한다는 취지를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앞서 외교부도 전날 밤 이번 사안의 원인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문제'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외교부는 이날 윤 대사대리의 발언 이후에는 '추가로 설명할 이야기는 없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한미 모두 이번 사태를 진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한국의 여론을 크게 흔들었다. 한미동맹에 대한 불신이나 비판적 의견이 부각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사태 초기 '핵 무장론'이 민감국가 지정의 이유로 지목되면서 정치권에서도 격렬한 공방 사안이 됐다.
야당은 미국 측의 설명이 나온 이날에도 민감국가 지정이 '외교참사'라며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국회는 오는 24일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정부를 상대로 현안질의에 나설 예정이다. 이때까지 여야의 공방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달 15일 민감국가 지정이 공식 발효될 때도 다시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또 윤 대사대리가 밝힌 보안 사고의 구체적 내용의 수위에 따라 불씨가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단순 실수거나 유출을 시도한 자료의 수준이 낮다면 큰 문제로 번지지 않겠지만, 이 사안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당국이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 등이 나타날 경우 사안을 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한미 양국의 공식 입장 외에 긴밀한 소통은 이번 주 미국을 방문하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안 장관은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민감국가 지정 관련 미국 측의 구체적 설명을 듣고 공식적인 해제 요구를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논의가 이번 사태의 확전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가늠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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