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일 방미 길에 오른다. 안 장관은 이번 방미 일정에서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 등 고위 관계자와 만나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을 파악하고, 지정 해제를 요청할 계획이다.
18일 산업부 등에 따르면 안 장관은 미국과의 민감국가 문제 협의를 위해 19일 미국 출장길에 오른다.
안 장관의 방미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로, 지난달에 이어 약 3주 만의 재방문이다. 안 장관은 앞서 2월 26~28일 관세 문제 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해 고위 통상당국자들과 첫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산업부는 안 장관의 이번 방미 일정으로 라이트 미 에너지 장관과의 면담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19일 출국하는 일정으로, 미 에너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조율 중"이라면서 "이번 방미 목적은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 조치에 대한 협의가 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 장관의 이번 방미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최 권한대행은 17일 미국 에너지부가 '민감국가'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것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금주 중 미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적극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미 에너지부는 지난 1월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추가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최근에 와서야 파악해 '외교 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이유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나, 배경에 대한 윤곽은 조금씩 드러나는 모습이다.
외교부는 미국 측과 소통한 결과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은 한국의 외교 정책의 문제가 아닌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제기된 '핵무장론'이나 비상계엄 사태가 이번 사건의 핵심 원인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한미 양국 모두 '보안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에너지부 감사관실이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힌트를 엿볼 수 있었다. 이 보고서에는 에너지부 산하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도급업체 직원이 '특허 정보'에 해당하는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한국으로 가져가려다 적발돼 해고된 사례가 담겨 있었다.
감사관실 조사 결과 이 직원은 유출을 시도한 정보가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유출 과정에서 이 직원과 '외국 정부'와의 소통이 있었다고 밝힌 점도 눈에 띈다.
보고서는 '한국'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문제가 된 직원이 한국행 비행기에 타려다 적발됐다고 명시해 '외국 정부'를 사실상 한국으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조셉 윤 주한 미국 대사대리도 이날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초청 특별 간담회에서 "민감국가라는 것은 에너지부 연구소에 국한된 조치"라며 "마치 큰일이 벌어진 것처럼 모든 것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됐지만, 이것은 절대로 '빅 딜'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이 '국가 대 국가'의 교류에 부정적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편 미 에너지부는 그동안 국가 안보, 핵 비확산, 경제 안보 위협, 테러 지원, 지역 불안정 등을 이유로 특정 국가를 민감국 리스트에 올려왔다. 주로 테러 우범국 등 미국의 제재 국가가 대상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에너지부가 지난해까지 지정한 민감 국가는 중국, 대만, 러시아, 이란, 북한, 인도, 우크라이나, 이라크, 시리아, 이스라엘, 쿠바 등 25개국이다. 그중 아시아가 10개국, 중동 4개국, 아프리카 3개국, 유럽 7개국, 중남미 1개국이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같은 미국의 우방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은 한 곳도 없다. 민감 국가 목록에 오른 나라 중에서 미국과 '상호 방위 조약'을 맺은 동맹국은 한국이 유일하다.
미 에너지부의 민감 국가로 지정되면 원전, 핵 비확산 분야는 물론 반도체, AI(인공지능), 양자, 바이오테크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연구·개발 협력에 제약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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