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핵 강국'을 천명하며 핵 무력 강화에 매진하는 북한도 40여 년 전에는 '한반도 비핵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실이 13일 공개된 남북회담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통일부가 이날 공개한 '제6차 남북회담 문서' 중 '사료집 12권'에는 북한이 40여년 전 남북회담장에서 적극적으로 펼쳤던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주장이 담겨 있다.
김일성 주석은 지난 1986년 12월 30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우리는 민족이 멸살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조국 강토가 미국의 핵 전쟁 마당으로 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면서 "조선반도를 하루빨리 핵무기가 없고 전쟁위험이 없는 '비핵지대·평화지대'로 만들 것"과 "조선 민족을 멸살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를 남조선에서 철수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김 주석은 또 '조국 통일 실현'을 위해 "북남(남북)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 회담에서 "호상 비방중상을 중지하며 북남 사이에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를 실현하여 민족적 유대를 도모하는 문제와 같은 당면한 정치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들"을 협의하자고 강조했다.
아울러 △무력 축소 △군비경쟁 중지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큰 규모의 군사 연습 중단 등 긴장 완화 조치에 대한 협의를 제안했다.
김 주석의 '비핵지대' 주장 이후 북한은 1987년 1월 11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당시 이근모 정무원 총리와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명의의 대남편지 형태로 '남북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했다.
북측은 "북남 고위급 정치군사회담 개최 일시는 오는 1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 우리측(북측) 지역의 통일각과 귀측의 평화의 집으로 하되 첫 번째 회담은 통일각에서 가질 것을 희망한다"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남측은 그보다 앞서 진행됐던 3가지 회담을 선제적으로 열어야 한다며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이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하기 한 해 전인 1986년,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인 '팀 스피리트' 훈련을 빌미 삼아 이미 일정까지 합의된 적십자 회담과 경제회담, 국회회담을 위한 예비 접촉 등에 응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도 신년 국정연설에서 '남북대화 재개'와 '남북한 당국 간 최고책임자 회담'에 북한이 호응하길 촉구했다. 그러면서 남북 당국 간 책임자 회담이 열리면 북측이 제의한 고위급 정치군사회담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취지로 북측을 설득했다. 그럼에도 팽팽한 남북 간 입장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북한이 당시 '비핵화'라는 개념을 최고지도자의 육성으로 언급하고 즉시 군사회담 개최를 요구했던 이유는 불리한 정세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소련, 동유럽의 개혁개방 분위기에 더해 1986년 베트남에서도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 정책'이 도입됐으며, 중국도 1990년 제11회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며 국제 정세가 '대결'에서 '대화'로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권의 개방 분위기에 북한도 '새로운 갈림길'에 선 때였다.
이에 북한은 새로운 노선으로 군사력 강화 및 핵 개발이라는 전략을 택하고, 이를 위한 포석으로 미국의 '핵 능력'이 한반도에서 빠져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이후 장기간의 국책 사업으로 핵 능력 강화를 추진해 현재는 '핵 보유국'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 2023년 9월 소집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헌법에 '핵무기 발전 고도화'를 명시하기도 했다. '핵 강국'이 됐다고 주장하는 북한은 현 정세를 40여년 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평가하고 있고, 이것이 핵 보유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구성하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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