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뉴스1) 김세은 기자
학대당한 시설에 어떻게 계속 있고 싶겠어요. 그런데 시설 밖으로 나오는 건 또 다른 공포죠.
상습 학대 논란을 빚은 울산의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상담했다는 울산장애인부모회 윤현경 사무국장은 8일 뉴스1에 이같이 밝혔다.
1988년 개원한 A 재활원은 중증 지적장애인 185명을 수용하는 전국 최대 규모 시설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최근 이곳 생활지도원들이 거주 장애인들을 상습적으로 학대한 정황이 드러나자 그 가족들은 충격에 빠졌다.
윤현경 국장은 “현재 입소자의 부모들은 자녀가 폭행당하는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워할 정도로 큰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작년 10월 7일부터 한 달간 녹화된 생활실 내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500여건의 학대 의심 정황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영상으로 확인된 가해자만 20명인데, 피해 장애인 29명이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씩은 폭행을 당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동안 A 재활원에서는 3~4인이 생활하기 적절한 크기의 방에 8~9명의 입소자가 함께 생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생활실 특정 동 특정 층에서 피해자가 다수 나온 것으로 전해지면서,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다른 입소자들도 간접적인 피해자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윤 국장은 “울산시와 북구는 현재 직무에서 배제된 가해 직원의 대체인력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하지만, 부모들은 자녀의 학대를 방치했던 시설을 어떻게 믿고 맡길 수 있겠냐”며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대 피해가 은폐되기 쉬운 장애인 집단수용시설의 폐쇄적인 운영 방식이 이번 사건의 구조적인 원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윤 국장은 시설 입소자와 그 가족에게는 시설 밖으로 나오는 것도 “공포”라고 표현했다.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자 중에서는 가족의 부재, 가정형편 어려움 등의 사정으로 입소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그간 학대 사건이 벌어졌던 장애인 수용시설들이 갈 곳 없는 입소자들의 처지를 볼모로 구조적인 성찰 없이 시설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당국의 철저한 수사와 행정청의 책임 규명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탈시설’ 정책으로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시설에 연간 국시비 보조금만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데, 이는 장애인들의 24시간 자립 지원체계를 충분히 구축할 수 있는 예산”이라며 “매년 울산의 장애인 단체들이 이를 요구했지만 울산시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고 했다.
A 재활원의 2025년도 세입·세출 예산을 살펴보면 올해 보조금 수입은 79억695만원으로, 전년 대비 4억3948만원이 증가했다. 입소자부담금, 후원금 등도 시설 운영비 및 인건비로 활용되고 있다.
학대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울산시는 전날 A 재활원을 찾아 관련 정황에 대한 감사에 나섰다.
울산 북구의회는 지난 6일 저녁 피해 입소자 가족의 요청으로 A 재활원 관계자들과 함께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가족 측은 형식적인 지도 점검이 아닌 불시 점검을 통해 적극적으로 감독해달라고 요청했고, 시설 측은 퇴사를 생각하는 직원이 많아 입소자들에 2차 피해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통근 버스 등 지원을 요청했다.
북구의회 박정환 복지건설위원장은 이날 뉴스1에 “북구 노인장애인과와 함께 장애인 시설에 대한 지도 감독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하고, 현재 시설에 남아 과로를 겪고 있는 종사자들도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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