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나는 심판자이자 중재자다. 너희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집행'하면 돼."
가스라이팅범 A 씨(33)는 얄팍한 법률지식을 내세워 피해자 2명의 인생을 나락 끝으로 떨어트렸다.
그는 채권추심 업무를 하며 익히게 된 법률 용어 등을 구사하며 마치 법률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했다.
초반엔 피해자들의 대출 채무와 신용 문제 등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회생절차에 필요하다며 자신의 계좌를 이용하도록 했다. 거래경험과 법률 지식이 부족한 피해자들은 A 씨를 신뢰했지만, 이 신뢰는 한순간에 범행 도구로 전락했다.
A 씨는 피해자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지도 않은 허위 분쟁이나 소송 사건 등이 실존하는 것처럼 꾸미고, 그 채무와 비용을 자신이 변제했다며 자신에게 갚으라고 강요했다.
심지어 C 씨가 B 씨의 계좌에서 돈을 마음대로 소비한 것처럼 조작해 새로운 분쟁을 조성했다.
피해자들을 부른 A 씨는 자신이 이 분쟁을 해결할 '심판자'이자 '중재자'를 자처했다.
A 씨는 피해자들을 여수의 한 거처에 머물게 하면서 비상식적인 규칙을 만들었다. 무단인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결론내라며 밤샘토론하도록 시켰다. 잠이 들면 자신이 직접 때리거나 피해자들끼리 때리게 했다. 규칙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에게 심판비와 출장비를 지불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폭행과 피해자들의 상호 폭행 행위를 '집행'으로, 벌금을 자신에게 내는 것은 '공탁'으로 표현했다.
이후 A 씨는 계속 돈을 요구하며 수시로 거주지를 방문하거나 밤에 장시간 영상 통화를 걸어 감시했다.
범행은 날이 갈수록 악랄함을 더했다.
그는 '심판비와 공탁금, 출장비가 들어오지 않는다. 너희가 규칙을 안 지켰으니 위반자는 맞아야 한다'며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2023년 6월부터는 자신의 차를 건네며 '승용차에서 이탈하거나 잠을 자면 규칙 위반이다. 이를 위반하면 6만 원의 벌금을 나에게 지급해야 하고, 못 내면 맞는다'는 새로운 규칙을 추가했다.
이때부터 피해자들은 일용노동 시간 등을 제외하고는 승용차에서만 머무르며 생활했다.
이후 A 씨는 수시로 철근, 벽돌 등으로 피해자들을 폭행하고 피해자들이 일용노동으로 번 돈을 심판비 등으로 가져갔다.
심판비를 내지 않으면 각종 체벌이 돌아왔다.
A 씨의 폭행이 두려웠던 피해자들은 일상을 즉시 A 씨에게 보고하고 위반사항이 나오면 서로를 때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피해자들은 매일 같이 돈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보고해야 했다. A 씨와 같은 나이임에도 존댓말을 했고, 감시와 욕설에도 반박하지 못한 채 오히려 미안하다고 사과를 반복하는 등 철저하게 정신과 육체를 지배당했다.피해자들이 A 씨에게 빼앗긴 돈은 약 7억 원에 달했다.
차량 감금 생활을 이어가던 피해자들은 잠들면 상대방 허벅지를 돌로 찍는다는 A 씨의 지시를 철저히 수행했다. 두명 모두 허벅지의 상처가 곪아 썩기 시작했다. A 씨는 냄새가 난다며 창문도 내리지 못하게 했다.
잔혹 범죄 2023년 7월 29일 오전 11시 41분 여수 한 졸음쉼터의 차 안에서 더 이상 흘릴 피가 없어 숨진 B 씨가 발견되면서 끝을 맺었다. 차 안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C 씨가 실신해 있었다.
범행 직후 A 씨는 생존한 피해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도록 했고, 실제 C 씨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집요한 수사로 '가스라이팅범'의 존재를 알아냈다.
A 씨는 강도살인, 강도상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2심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난 11일 A 씨의 항소를 기각한 광주고법 제2형사부는 "피해자들은 피고인의 가혹한 폭행과 거짓으로 점철된 기망에 속아 반항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절대적 복종관계에 놓이게 됐다. 피해자들은 폭행을 피하기 위해 주변에서 돈을 빌리거나 일용노동을 했고, 피고인은 이들을 노예처럼 부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상처가 악화돼 가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서도 무관심한 태도로 범행을 지속, 이들을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듯한 잔혹한 모습을 보였다. 당심에서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어 범행을 반성하는지 의문이다. 원심의 형은 부당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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