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최근 상법 개정안에 이어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경제계가 부담감을 호소하고 나섰다.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소송 우려로 모험적인 혁신이 불가능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당장 기업들의 부담이 11조 원 늘어난다는 점 때문에 마냥 환영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런 기업 부담 증가는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는 지난 20일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인상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했다. 지난 2007년 이후 18년 만의 국민연금 개혁이다.
23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경제계는 "지금의 저부담·고급여 국민연금 체계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청년들의 부담을 다소나마 덜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라면서도 인건비 부담 압박에 끙끙 앓고 있다. 국민연금은 회사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하는 구조다. 현재는 근로자가 4.5%, 회사가 4.5%씩 납부하고 있는데 13%로 올라가게 되면서 기업과 근로자가 각각 6.5%씩 부담해야 한다.
지난 2023년 말 기업(사용자)이 부담한 국민연금 보험료는 25조 7276억 원이다. 이번 개정에 따라 보험료율 인상을 단순 반영하면 보험료는 37조 1621억 원으로 11조 4345억 원 증가한다. 44.5% 늘어난 수치다.
경제계는 기업의 부담 증가는 결국 고용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계는 "전체 사업체의 95% 이상이 30인 미만 사업체고, 여기에 약 1000만 명이 근무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보험료율 인상은 영세·중소 사업주의 경영 부담과 취약 근로계층의 고용을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고 했다.
경제계는 기업이 고용과 투자를 유지하면서 추가 보험료 부담 여력을 창출할 수 있게 퇴직급여 기여금, 법인세와 상속·증여세 등 각종 세 부담금, 사회보험 부담금 등 기업의 총량적 부담을 늘지 않도록 다른 정책 방안을 병행해서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도 고심거리다. 국회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경제계는 이사에 대한 소송이 남발해 결국 경영 마비 사태를 초래하고 해외 투기 자본의 먹튀 조장법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연간 업무상 배임죄 신고 건수는 매년 2000건 내외로 발생하는데 개정안이 시행되면 소송이 남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최근 경제8단체는 국회를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의 복잡한 정국 현안으로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후순위로 밀릴 것을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 때문에 상법 개정안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관심을 환기하고 정부에 경제계의 우려를 재차 전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했다"고 설명했다.
경제계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폭탄 등 국내외 정치적·정책적 불활실성으로 어려움이 상당하다고 호소한다. 여기에 경제계가 우려하는 법안들이 연달아 국회를 통과하자 경제계의 경제 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00인 이상 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신규 채용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60.8%로 집계됐다. 2022년 조사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경총은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기업 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기업들이 채용에 보수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기업의 경제 심리를 다시 살리기 위해선 경영 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법안은 입법 과정에서 충분히 경제계와 논의하고 요청도 과감하게 반영해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계는 최근 정부에 2025년 세법 개정 의견을 제출했다. 다만 경제계의 요구가 수용될지는 미지수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결국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쉽게 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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