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뉴스1) 이정현 김승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차별적인 관세 조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과 미국 정부가 '조선·에너지분야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해, 향후 협상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한미 간 조선·에너지 분야 협력은 미국의 관세 규제에 우리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유력한 지렛대로 꼽힌 만큼, 협의체 논의를 통해 관세 피해를 최소화하고 양국 간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지 기대가 모아진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4일 정부세종종합청사에서 방미 출장 관련 브리핑을 열고, 우선 한미 조선업 협력과 관련해 "실무급협의회 구축이 첫발을 뗐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지난달 26~28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했다. 최근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관세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면담했다.
안 장관은 미국 정부에 조선·에너지 분야 협의체를 언급하기 전에 한국의 투자 구조가 변한 점을 먼저 강조했다고 한다. 안 장관은 "미국은 한국이 중국 수출 우회로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이런 측면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지나오면서 한국의 투자 첫 번째 목적지는 미국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차원에서 조선,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할 여지가 많고 한국이 어떻게 투자해 나갈 것인지 논의할 협의체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협의체 구성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산업부 주도하에 국방부, 외교부, 대통령실 안보실까지 포함한 범부처적으로 구성될 것"이라며 "미국은 백악관 내 조선 관련 TF가 구성돼 있다. 조선 문제와 관련해서는 러트닉 상무장관이 협의체를 끌고 나가겠단 의지도 강해 상무부가 주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안 장관은 한시간가량 이어진 러트닉 상무장관과의 면담 과정을 언급하며 "미국은 범부처 차원에서 해군력 증강과 이를 위해선 조선업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데 상당히 깊은 인식을 갖고 있고, 양국 간 협력 필요성도 미 측이 먼저 꺼냈다"면서 "미국은 한국이 중요한 파트너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조선 분야에서 빨리 협력해 보자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논의했고 우리가 충분히 서포트(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전했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미국이 군함·유조선·쇄빙선 등을 패키지화해 대량으로 장기 물량을 주문한다면 한국이 이를 우선 제작해 납품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제안했으며, 러트닉 상무장관은 이에 대해 "고맙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한국의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장관은 "구체적으로 입장을 얘기할 상황은 아니었다"면서도 "미국 입장에서는 굉장히 우선순위가 높은 사업인 거 같다. 원론적으로 보면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에너지는 파나마운하를 거쳐야 하는데 태평양 쪽(알래스카)에 있는 에너지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된다"며 사업 참여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어 "우리뿐 아니라 여러 국가에 의사를 타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향후 실무협의체에서 구체적인 내용, 상황을 검토한 후 우리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나, LNG 수입 확대는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꼽히는 방안이다.
LNG 수입은 지난 1990년대 말부터 해마다 898만 톤을 수입해 오던 카타르와 오만산(産) 장기 계약이 지난해 말 끝난 만큼, 한미 양국이 '에너지 협력'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조선업과 에너지 수입 확대 외에도 비관세 장벽 완화를 위한 협상도 실무협의체를 통해 구체화할 예정이다. 이번에 꾸려질 한-미 협의체는 국장급 실무협의체 5개로, 각 협의체는 조선, 에너지, 관세, 비관세,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고, 협력 방안을 구체화해 나간다.
안 장관은 이번 방미 성과를 묻는 말에 "(우리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워싱턴DC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을 비롯해 각국 통상관계자들까지 모여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며 "큰 정상회담들이 줄지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회담을 가장 먼저 하고, 협의체도 가장 빨리 구축하게 된 것은 성과"라고 꼽았다.
다만 미국 측은 '관세 제외 및 유예 조치'에 대해 아직 확답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 장관은 "구체적인 답을 얻진 않았다"면서도 "관세 부과가 발표된다고 해도 미국과 계속 협의해 나가면서 면제를 받거나 유예를 받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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