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취소되고, 검사가 미뤄져도 환자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참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병이 재발하고, 심지어는 사망한 사례도 나타났는데 정부에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어요.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증원 발표 이후 벌어진 의료공백이 약 1년을 맞이한 12일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안 대표는 "정부의 의료개혁 중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은 하나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10개 환자단체가 소속돼있다. 회원 수는 9만 2000명 정도다. 연합회가 지난해 2월부터 4월 중순까지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입은 환자 불편·피해 사례'를 모니터링한 결과 39건가량이 접수됐다. 환자 대다수는 '검사 취소·연기' '수술 연기' '항암치료 연기' 등을 호소했다.
안 대표는 "지난 6일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정갈등으로 의료공백이 발생한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전국 의료기관의 초과 사망자 수가 3136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는데, 실제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며 "원래 2주 뒤 수술하기로 했는데,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해 수술이 한 달 뒤로 밀려 그 사이 환자가 사망했다면 이건 누가 봐도 의료공백으로 인해 환자가 피해를 봤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 집단사직 초기 큰 피해를 본 환자군에는 백혈병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백혈병 환자들에 대한 골수검사, 요추천자 시술 등 검사와 시술은 주로 전공의가 담당한다. 하지만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1~2달 동안 잡혀있던 이런 검사·시술이 지연됐다.
안 대표는 "백혈병 환자는 몇 차례 항암치료를 받는데, 통상 1차는 '집중 항암치료'를 2,3,4차는 '공고 항암치료'를 진행한다"며 "하지만 1차 항암치료를 잘 마친 백혈병 환자가 2차 항암치료를 기다리던 중 (의료대란이 벌어져) 치료가 2주 정도 연기됐다. 결국 그 환자는 그사이 백혈병이 재발해 처음부터 다시 치료받게 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그는 4월 중순부터는 환자 피해사례에 대해 모니터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환자를 위한 조치는 없었다는 이유다. 그는 "(의정사태) 초기에는 중증·희귀 환자들이 정부에 민원도 많이 제기하고, 연합회에도 많은 연락이 왔다"며 "정부가 운영하는 피해 신고지원센터에 신고하면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받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정부는 정작 환자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보건복지부에서 (환자가 신고한) 병원으로 현장 조사를 오히려 환자가 치료받던 병원에 가기가 더 곤란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결국 정부가 나서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내놓거나, 발생한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료소송을 걸면 안 되냐는 얘기도 있는데, 소송은 환자가 사망해야 걸 수 있다"며 "환자를 두고 의료현장을 떠난 건 전공의들인데, 대학병원에 남아서 치료해주는 교수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또 치료가 끝날 때까지 얼굴을 계속 봐야 하는데 어떻게 소송을 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의 의료개혁이 환자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조정 시범사업을 예로 들었다. 이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응급, 희귀난치 질환에 집중하도록 중증 진료 비중을 현행 50%에서 70%까지 상향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연간 3조 3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한다.
그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 중 그나마 환자에게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진료협력 제도'가 있는데, 이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들 치료가 끝나고 나면 2차 병원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라며 "환자가 2차 병원으로 가더라도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상급종합병원으로 당일 신속히 복귀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의료공백 장기화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필수 의료 공백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과 같은 필수 의료만큼은 의료인이 어떤 집단행동을 하더라도 정상 작동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 향후 의료공백이 생겼을 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환자 중심의 의료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법적 체계를 마련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환자기본법'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리는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에 진술인으로 참여해 의대증원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의대증원에 대해 안 대표는 "지난 1년 동안 환자, 국민이 입은 피해를 고려해 하루빨리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며 "어떻게든 사회적 합의를 해 의정갈등을 풀려야 의료 공백 사태도 해소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의료공백의 책임은 전공의에게 더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의정갈등 책임소재를 따지면 '정부'의 잘못이 더 크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적어도 의대 증원을 결정하는 제대로 된 법적체계가 갖춰져 있었으면,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데는 정부의 잘못이 더 크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백혈병 환자가 발생하면 환자도 살기 위해 열심히 투병하지만, 가족들도 환자의 투병 의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응원하고, 의료비도 분담하고 혈액도 구하는 등 열심히 돌본다"며 "환자는 0과 2000명 사이 숫자싸움에 희생될 정도로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장 프로필
△1970년 출생 △2001년 한양대 법학과 졸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장 △보건복지부 심뇌혈관질환관리위원회 위원 △상급종합병원평가협의회 위원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이사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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