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부딪힌 감정노동자, 어디로③] 보호 대책 실효성 '글쎄'…"평가제 없애야"

노동자-고객 즉시 분리 못해…산안법 개정에도 대다수 "폭언 그대로"
고객 평가 의식해 신고 어려움…"고객 권익 보호에만 초점 맞춰와"

편집자주 ...일터에 나가면 제 감정을 숨겨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감정노동자'라고 불린다. 손님이 욕설을 내뱉을 때도 화를 삭히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더이상 기댈 곳이 없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이후에도 이들은 폭행·폭언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뉴스1은 콜센터 상담사, 지하철 역무원을 중심으로 감정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보호대책의 한계점을 살펴봤다.

서울시와 안전보건공단 주최로 서울역 앞에서 열린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 캠페인./뉴스1 ⓒ News1
서울시와 안전보건공단 주최로 서울역 앞에서 열린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 캠페인./뉴스1 ⓒ News1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감정노동'은 노동자가 고객을 상대로 응대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실제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표현하도록 요구되는 노동이다. 노동계에서는 약 10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용어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손님이 왕'이라는 보편적 정서 때문에 웃으며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 구조 재편으로 감정노동자수가 증가하면서 더이상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콜센터 상담사, 수리 A/S 출장 기사, 매장 판매 직원이 감정노동자에 해당한다. 이들은 회사의 성과 압박에 갑질에 그대로 노출되는 노동 환경에 놓여 있다. 이에 따른 정신적 고충은 산업재해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요양보호사와 간병인들의 감정노동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들의 인권 문제가 사회적 화두에 오르면서 대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도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가 대표적이다.

콜센터에 연락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고객의 폭언·폭행 등에 대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는 안내 음성도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산안법 제41조는 고객 응대 근로자에게 보호 장치를 두고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의 보편화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한계점도 분명하다. 감정노동자가 피해를 입을 때 회사에 보호 조치를 요구할 수 있지만, 회사가 노동자 요구에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 대해서만 처벌 규정이 있을 뿐 노동자와 고객 간 분리 조치 등에 대해 법적 강제성은 없다.

인권위의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8년 산업안전법 개정 이후에도 콜센터 상담사들이 느끼는 개선 효과는 미미했다. 법 개정 이후 폭언·성희롱이 줄었다고 평가한 상담사는 30.2%인 반면 '감소하지 않았다'는 평가는 31%로 더 많았기 때문이다.

산안법 개정 이후 제작된 고용노동부의 '고객응대근로자 건강보호 가이드라인'과 '업종별 매뉴얼' 역시 감정노동자의 보호를 경영 방침으로 수립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권고 사안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가이드라인에는 폭언 대응 절차가 대면·비대면(콜센터) 별로 3단계로 분류돼 있지만, 즉시 보호받을 방법은 없다. 상담사들 사이에서는 욕을 다 듣고 나서야 상담 종료나 분리 조치될 수 있어 '사후약방문'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폭언 고객과 상담사가 즉각 분리 조치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임종성 의원 대표발의)이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지자체에서도 감정노동자 보호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지역별 특색에 맞게 감정노동자 지원책이 나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대부분 적용 범위가 공공기관에 집중돼 있고 민간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수립한 감정노동자 권리보호 1차 기본계획에도 대체로 공공부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20년 2차 기본계획에서야 민간 부문으로 확대하는 지원책이 담겨 있다.

공공부문에만 지원책이 쏠리는 것을 우려해 부산시는 지난달 민간 영역으로 제도 확장에 목표를 둔 감정노동자 권익보호 제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특히 성과 중심의 업무 형태가 감정노동 심화에 한몫한다. 제조업의 경우 노사 교섭 또는 직무분석 등을 통해 최소한의 협의를 거쳐 노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반면 감정노동은 주로 고객 만족도 등을 평가받아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아 노동 강도 조절이 어렵다.

정영주 부산노동권익센터 사무국장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성과 중심의 감정노동자 평가 제도를 줄여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현행법상으로는 감정노동자들이 고객 평가를 의식해 회사에 고충을 제대로 신고할 수 없다. 회사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 등을 포함한 종합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오랜 기간 서비스 이용자들에 대한 권익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감정노동자 인권에 대한 인식은 굉장히 낮았다"며 "서비스 노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인식 개선을 위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300인 이상의 기업 대다수가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을 도입해 노동자들의 정서적 고충이나 직무 스트레스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몇몇 기업이 시도하고 있지만 정부의 관심이 뒷받침돼야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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