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지윤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 정부의 크기를 줄이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인사를 꾸리는 작업에 나섰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가안보위원회(NSC)에서 약 160명의 직원이 해고됐고, 법무부 고위 변호사 약 20명이 교체됐다. 특히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부 기관에 대해 경멸심을 드러내며 해임 또는 해체를 예고했다.
트럼프가 이렇게 과감한 인사를 단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있다. 그는 자신의 계획에 반대하는 이들을 딥스테이트라고 몰아가며 이들이 연방 정부 안에서 자신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딥스테이트는 당초 민주주의 제도 바깥에서 은밀하게 운영되는 '그림자 조직'을 의미했다. 주로 튀르키예와 이집트 등 군부 정권에서 합법적으로 선출되지는 않았지만 영향력이 큰 정부 및 군부 인사를 표현할 때 등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997년 이 용어를 '법의 범위를 벗어나 기능을 하는 힘의 집합'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최근 딥스테이트는 미국 연방 정부가 비밀 공무원 집단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음모론으로 의미가 변질됐다. 이는 2021년 대선 전부터 미국의 음모론 집단 '큐어넌'이 주장하면서 더욱 확산했다. 큐어넌은 사탄을 숭배하는 소아성애자들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황당한 음모론을 퍼뜨리는 극우 트럼프 지지 집단이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 기간에도 딥스테이트가 자신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정부 내 딥스테이트 인사들을 제거하겠다고 공약했다.
NYT는 과거 음모론이 특정 사례를 입증하기 위해 꾸며졌지만 최근에 들어선 지지자들을 모으거나 기반을 다지기 위한 노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제명된 대표 인사로는 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이 있다. 당초 FBI 국장직의 임기는 정권에 상관없이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 임기인 4년보다 긴 10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트럼프는 레이가 딥스테이트를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다며 비난했고, FBI를 딥스테이트의 온상으로 묘사했다.
레이가 물러난 자리는 '트럼프 충성파'이자 딥스테이트 신봉자인 캐시 파텔이 지명됐다. 파텔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직원들은 모두 제거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FBI의 정보 수집 권한을 박탈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딥스테이트는 비단 고위인사뿐만 아닌 연방 공무원 대량 해고의 빌미를 만들기도 했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공무원 수만 명을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임명된 공무원 1000명 이상을 해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연방 노조와 비판론자들은 딥스테이트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트럼프와 그의 동료들이 권력 장악을 정당화하기 위해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거센 반발에도 이번 임기 동안 딥스테이트를 척결하겠다며 칼을 갈고 있는 상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수장으로 새운 '정부효율부(DOGE)'가 이 업무를 맡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지난해 NYT는 머스크의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보안 보고 규칙을 위반해 연방 조사에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이에 머스크는 "딥스테이트 반역자들이 기성 언론에 고용한 하수인들을 이용해 나를 노리고 있다"며 "나는 싸움을 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을 끝내는 건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직 DOGE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트럼프는 DOGE가 연방 정부 인력을 감축하고 규제 완화, 지출 삭감을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더힐은 DOGE가 "딥스테이트를 축소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작은 정부의 십자군 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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