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마가, 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드는 대신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메가, Make Europe Great Again) 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아지고 있다.
유럽은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안보 동맹이 아닐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동안 느슨해진 통합의 고삐를 다시 죄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냉전 종식 이후 유럽 통합을 향한 가장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유로라는 단일 통화를 채택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통합 의지를 발산했다. 특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 전례없는 삿대질과 고성이 오간 백악관 회담을 계기로 유럽의 자주국방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유럽 안보의 최전선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백악관 회담 결렬 이후 2주간 미국의 군사지원을 받지 못했고 러시아로부터 빼앗은 쿠르스크 영토의 2/3를 다시 빼앗겼다.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다시 만나 임시 휴전에 합의하고 군사 지원재개를 약속 받았지만 유럽은 만천 하에 드러난 불안한 미국 안보동맹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럽 최대 경제국 독일이 가장 먼저 결단을 내렸다. 독일은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20년 넘게 지속된 엄격한 재정준칙을 깨는 기념비적 정책 선회를 단행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차기 총리는 대규모 국방비 지출을 위해 기본법(헌법)의 엄격한 '부채 브레이크'의 예외를 인정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일종의 군사적 케인즈주의가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는 독일 경제를 다시 부양할 수 있다. 독일이 자동차가 아니라 탱크를 만들어 팔 수 있다는 논리다.
프랑스는 EU 공동 국방비 지출에 대한 압력에 핵우산을 제안했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핵보유국으로서 핵억지력 확장을 통한 유럽 자체 핵우산 구상을 제안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핵우산 보호를 받는 국가들, 특히 독일은 그만큼 재정적 부담을 더하고 이는 프랑스 국내 정치에서도 잘 팔릴 수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하지만 유럽에 드리운 미국의 군사적 지원 역량은 막강하다. 단순히 돈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기술과 무기까지 의존이 크고 광범위해 단시간 자강을 이루기 어렵다. 결국 유럽은 미국의 군사지원 중단을 최대한 늦추는 동시에 안보 독립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이에 지난주 EU 집행위원회는 방위산업에 1500억유로를 지출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유럽 국방비를 조달하는 데 있어 핵심은 유럽 공동채권이다. 일종의 국채 형태인 유럽 공동채권이 탄생하면 단순한 자금 조달에 그치지 않는다.
유로가 미국 달러를 대체해 신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축통화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라고 FT는 평가했다. 트럼프의 정책 혼선에 따라 미국 국가신용등급이 다시 강등 압박을 받으면 유럽 공동채권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지는 미국 국채를 대신할 매력적인 자산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진짜 남은 문제는 규모다. 로이터에 따르면 EU는 향후 10년간 국방에 5000억 유로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국방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로 늘리려면 연간 2000억 유로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브루겔 싱크탱크는 트럼프라는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면 단기적으로 연간 국방 지출이 GDP의 약 3.5%까지 2500억 유로 증가해야 하며, 그 중 절반을 EU 차원에서 충당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약 6250억 유로의 신규 공동발행 EU 채권이 판매될 것이라고 로이터는 예상했다.
유럽개혁센터는 지난달 국방을 위한 채권발행이 실현 가능하며 5000억 유로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경우 연간 이자비용은 200억 유로가 채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유럽의 부채 총액은 미국과 일본의 부채 총액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EU 국방채권에 대한 최고 AAA 신용등급은 더 안전해 보일 수 있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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