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런던=뉴스1) 강민경 권영미 기자 이지예 객원기자 =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 이튿날인 21일(현지시간)에 88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이날 바티칸TV를 통해 "오전 7시 35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발표했다.
패럴 추기경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성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깊은 슬픔 속에서 전한다"며 "그는 삶의 전체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고 애도했다.
2013년 14억 명의 가톨릭 신도를 대표하는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쟁과 재난이 끊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 '빈자들의 친구'이자 '개혁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 청빈으로 유명한 가톨릭 수도회 '예수회' 출신 첫 교황 등 수많은 기록을 쓰기도 했다.
12년간 재위한 그는 보수적인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교회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불투명한 재정을 개선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이 밖에도 △이혼 △사제의 결혼 △동성애 △교회 내 여성의 역할 강화 등 여러 사안에 관해 열린 태도를 보이며 진보적인 신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빈부격차 등 사회 이슈도 진보적인 면모를 보였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빈곤 문제를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으로 넘기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사형제도와 낙태·안락사 등에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다만 뉴욕타임스(NYT)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저 온순한 지도자는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자신의 정책에 따르지 않는 교리 감시기구 수장을 포함한 보수 성향의 가톨릭 고위 인사들을 해임하거나 고립시켰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 화학 기술자가 되려고 공부했지만 17세 때 산호세 플로레스 성당의 고백실에서 신의 부름을 받고 그때부터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해 1969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즉위명(공식명칭)인 프란치스코는 이름에서부터 '빈자들의 친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3세기 초 청빈한 삶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신으로 존경받았던 이탈리아 아씨시의 성(聖)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이름만큼이나 삶도 검소했다. 2002년 아르헨티나 외환 위기 당시 아르헨티나 대주교였던 그는 저택이 아닌 시내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저녁을 직접 요리하며 생활했다. 운전사가 모는 리무진을 타지 않고, 도보로 성당으로 나오고 볼일을 보러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했다.
2001년 추기경으로 임명된 후에도 그는 아르헨티나의 신도들을 향해 "내가 추기경으로 임명된 것을 기념한다고 로마에 오지 말고 여행에 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라"고 당부했다. 교황 선출 후에도 자국 신도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2014년 8월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 그가 탑승했던 의전 차량은 방탄 리무진이 아닌 소형차 '쏘울'이었던 것도 그의 검소한 면모를 더욱 부각했다.

젊은 시절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은 호흡기가 약했다. 21살 무렵 심한 폐렴으로 오른쪽 폐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2월에도 기관지염을 앓다가 폐렴 진단을 받고 38일 동안 입원했었다. 입원 당시에도 여러 번 호흡 곤란을 일으켜 산소 치료를 받았고 혈소판 감소증으로 수혈도 받았다.
퇴원 후 회복 중이었던 교황은 전날 부활절 야외 미사에 깜짝 등장해 신도들을 축복했다. 교황은 대독 메시지에서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의 휴전과 인질 석방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8일 부활절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묵상문에서 "망가진 세상에 진심 어린 눈물이 필요하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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