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설 기자 = "딥페이크 성범죄는 10대들 사이에서 폭넓게 발생하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입니다. 조금이라도 성을 악용할 경우 강한 처벌을 받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심어져야 조금씩 변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신보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취임 2주년을 맞아 지난 24일 뉴스1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디지털성범죄피해센터(디성센터)가 법적 지위를 얻게 된 것은 성과"라면서도 "딥페이크 범죄는 법 개정에 따라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경각심이 생겨났지만, 딥페이크 성범죄가 폭넓게 발생하고 있는 10대들의 법의식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얼굴을 합성하는, 이른바 '딥페이크' 성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디성센터 전담팀은 약 6개월간 총 1227건을 삭제 지원하는 성과를 냈다. 올해 4월부터 불법촬영물 삭제를 직접 요청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갖게 되는 여성인권진흥원 내 디성센터는 보다 체계적으로 삭제 지원 업무를 수행할 방침이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여성긴급전화1366을 운영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진흥원은 특히 '디지털성범죄 대응 강화'를 기관 경영전략 목표 1순위로 뒀다. 진흥원은 2018년 4월 디성센터를 개소해 디지털성범죄 피해 상담과 피해영상물 삭제를 돕고 있다.
여성진흥원에 따르면 딥페이크 피해를 신규 접수한 피해자는 2022년 124명에서 2024년 1104명으로 약 9배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신규 접수 피해자 중 10대 이하는 591명, 20대는 426명으로 피해 연령대가 낮은 특징이 있다.
신 원장은 "대부분의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는 80%가 20~30대였는데 딥페이크의 경우 10대가 훨씬 많아 어떻게 보면 새로운 범죄 유형이고, 불법촬영물이 성인사이트가 아니라 SNS 같은 플랫폼을 통해 유포된다는 점에서 기존 업무와 다른 방식으로 삭제 지원을 해야 한다"며 "SNS 채팅창의 경우 직원들이 하나하나 일일이 모니터링 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역량이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디성센터는 지난해 8월부터 전담팀(TF)을 꾸렸다. 365일 피해접수 및 상담을 통해 신속하게 유포 현황을 파악하고 삭제지원, 불법성증명공문 발송을 통한 삭제요청, 주 유포처로 언론에서 지목된 텔레그램(채팅방) 수사 의뢰를 실시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탐팀은 피해상담 3045건, 삭제지원 1227건, 불법성증명공문 통지 삭제 요청 66건, 텔레그램(채팅방) 수사 의뢰 125건의 성과를 냈다.
신 원장은 올해 디성센터의 법적 지위가 명확해지면서 삭제지원 업무가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 성인 사이트들은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디성센터에서 불법촬영물에 대해 삭제를 요청해도 '너희 기관의 법적 권한이 뭐냐' 이렇게 되물으면서 삭제 요청을 회피해왔다"며 "앞으로는 법적 지위가 있기 때문에 삭제 요청을 할 때 에둘러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4월17일 개정되는 성폭력방지법에서는 디성센터의 설치근거법 조항이 마련된다. 현행 법률에는 불법촬영물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은 있지만 이를 수행하는 디성센터에는 법적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다. 신 원장은 "이번에 법 개정을 하면서 유포되고 있는 피해자의 신상 정보 삭제에 대한 지원도 할 수 있게 됐다"며 "피해 지원의 체계와 범위가 모두 확정되는 좋은 성과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개정 성폭력방지법에 따라 4월부터 지역 디성센터가 생기면 피해자들은 가까운 곳에서 상담과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중앙 디성센터는 종사자 교육과 국제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등 역할이 커질 예정이다.
신 원장은 디지털범죄가 단기간에 줄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고등학생을 위주로 벌어지는 딥페이크 범죄는 조금이라도 성을 악용해 유포할 경우 강한 처벌을 받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심어져야 조금씩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며 "딥페이크뿐만 아니라 불법 촬영물이랄지, 그루밍 범죄 등은 전 세계적인 문제고, 타 국가에서도 법적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라 진흥원도 피해지원 범위를 계속 확장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디성센터 종사자 수가 늘어나는 피해자들을 지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디성센터는 요주 사이트 300여 개를 매일 감시하고, SNS를 통해 유포될 경우 일일이 검색해 찾아내고 있다. 현재 디성센터에는 정규직 33명, 기간제 2명이 일하고 있으며 1년 기준 1명이 약 300명 이상의 피해자를 담당, 1인당 1만8765건의 불법촬영물을 삭제하고 있다.
신 원장은 "디성센터의 업무 특성상 내담자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삭제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해서 기간제 채용이 쉽지 않다"며 "기간제 정원은 8명이지만 올해 2명을 겨우 충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피해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삭제지원 종사자의 인력 변동은 크게 없기 때문에 직원 1인당 맡고 있는 삭제 지원 건수가 2018년에 비해 5~8배 이상 폭등했다"며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술고도화도 필요하지만, 내담자가 굉장히 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는 인력 보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원장은 불법촬영물의 유포뿐만 아니라 재유포까지 막았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피해자분들이 자신의 영상물이 삭제되더라도 관련해 기사라도 나면 다시 상기되고 유포될까봐 겁난다고 말씀하신다"며 "경찰청과 협업을 통해 유포 일당을 아예 검거했는데, 그때 한 분이 '이제야 일상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거 같다'고 안도감을 표시하셨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럴 때 가장 큰 보람과 만족을 얻는 것 같다"고 했다.
신 원장은 앞으로 1년 남은 임기 동안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기반 성범죄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게 과제라고 전했다. 그는 "디지털 기반 성범죄는 행위 양태가 계속 달라지고 또 저연령화되는 그런 심각성이 있다"며 "어떤 새로운 유형의 피해일지라도 지원 체계가 굉장히 견고해서 피해자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그 지원 체계를 잘 구축해 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숙제"라고 했다.
sseo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