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 포대 자루를 열자 축 늘어진 개 사체들 사이에서 힘없이 얼굴을 내민 강아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는 그 모습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5년 전, 한 지자체 위탁 보호소에서 대량 안락사가 이뤄지던 현장. 당시 지자체 보호소 조사를 진행하던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가 현장을 급습하면서 참혹한 실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날 포대 자루가 열리지 않았다면, 숨이 붙어 있던 강아지는 다른 사체들과 함께 그대로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극적으로 구조된 강아지는 동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고, 이후 새로운 삶을 찾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그 강아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최근 보호자 A씨는 강아지의 근황을 전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구조된 강아지는 A씨에게 입양되어 '맑음이'라는 이름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맑음이는 현재 A씨가 입양한 다른 반려견들과 함께 마당이 있는 집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때 어린 나이에 버려져 세상의 잔혹함을 경험했지만, 지금은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댕댕이계 금수저'라 불릴 만큼 따뜻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상처는 아직도 맑음이에게 흔적을 남겼다. A씨에 따르면, 맑음이는 특정 생김새와 목소리의 남성을 유독 두려워한다.
A씨는 "한 번은 친구가 동물병원에 놀러 왔는데, 맑음이가 그 친구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오줌을 싸고 방구석으로 도망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며 "그런 반응은 처음이라 이후 특정 스타일의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맑음이는 평소에는 매우 밝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차를 타는 것도 좋아하고, 함께 사는 반려견들과도 사이좋게 지낸다.


A씨는 "그때 동물보호 활동가가 포대 자루를 열어보지 않았다면, 맑음이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며 "덕분에 깔끔한 성격에 매너 좋은 '왕크왕귀' 진도 믹스견에 대한 매력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보호소에 있는 동물 대다수가 진도 믹스견인데, 이 매력적인 친구들이 입양이 잘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맑음이의 사연이 진도 믹스의 매력과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해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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