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민들과 만나 규제 개선 건의 사항을 듣고 직접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동산·행정 명칭 등 각종 생활 규제에 대한 개선 요구가 쏟아지자 오 시장은 예정된 행사 시간인 2시간을 넘겨 총 3시간 동안 휴식 없이 문답을 이어갔다.
서울시는 경제 활성화를 억누르는 각종 규제에 대한 시민 목소리를 듣고 즉각적·효율적인 개선 방안을 제안하기 위해 14일 '규제 풀어 민생살리기 대토론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오세훈 시장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1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모든 시민 제안에 직접 답했다. 휴식 시간 없이 3시간 동안 질의응답이 이어지며 흡사 국정감사장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서울시민 100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한 이날 행사에서는 토지거래허가제 해지 요청부터 지역 내 비슷한 아파트 이름을 변경해달라는 요구까지 각종 생활 민원이 제기됐다.
강남 도곡동에서 22년째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다는 한 시민은 "가장 시원하게 규제 철폐를 논할 수 있는 것이 강남구에서 5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의 해지"라며 "시행해주신다면 이야말로 상징성 있는 규제 철폐이지 않겠나"고 제안했다.
이 시민은 "토지거래가가 폭등할까봐 구역을 지정한 건데 거래 수는 줄어들어도 거래가는 그다지 내려가지 않고, 사실상 해당 지역을 벗어나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지역 주민들은 시장께 이 말을 하지 못하면 돌아오지도 말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 지역 희망사항이어서 요청드린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재산권 행사를 임시적으로 막아놓고 있는 것인데 당연히 풀어야 한다"며 "다만 그 동안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의 상황이 있었는데 다행인 것은 지금 정책 환경이 무르익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침체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라며 "서울시도 사실 그간 허가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온 만큼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했다.
강남구 수서동에서 온 한 시민은 "술자리를 하고 나서 택시기사에게 신사동에 가달라고 했는데 강남구 신사동이 아니라 은평구 신사동에 내려줬다는 '웃픈' 이야기가 있다"며 "제가 사는 수서동도 수서 1단지, 수소 주공 1단지, LH 수서 1단지, SH 수서 1단지 등 비슷한 이름의 아파트가 많은데 여기에 사는 저도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또 "이름을 바꾸려면 시공사, 주민 동의, 구청 허가 등 절차가 많은데 비슷한 동 이름이나 아파트 이름을 변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오 시장은 문제 개선이 쉽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노력을 약속했다.
그는 "쉽게 바꿀 수 없는 행정적인 이유가 있다"며 "동네 이름 변경 같은 경우 일단 주민분들이 동의를 해주셔야 되는데 어느 한 동에서 양보를 잘 안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협의가 된다 하더라도 모든 공문서를 변경하는 등 행정 비용에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며 "그래도 문제 제기를 해주셨으니 신사동 같은 경우 양쪽 구청장님과 협의를 해보겠다"고 답했다.
이날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여러 규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오 시장은 이러한 한계에 대해 설명한 뒤 시 차원의 개선책을 소개하거나 개선 노력을 약속했다.
시민 김지영 씨는 "육아휴직, 돌봄휴가 등 일가정 양립 지원 제도가 생물학적 연령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발달장애인은 성인기에도 돌봄이 필요하지만 지원을 못 받는다"며 "지원 제도의 사용 연령이 성인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오 시장은 "육아휴직 등의 특례를 제공할 필요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며 "거기에 맞춰 한 번 준비를 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공무원들은 행정을 집행할 때 법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큰 원칙이 있다"며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연령 제한 폐지 등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이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저희가 해당 부처에 법 개정을 요청해서 법이 개정돼야 거기에 맞춰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며 "급한 대로 발달 장애인 부모님들을 도울 수 있도록 올해 예산을 마련했다"고 알렸다.
토론회가 장시간 지속되자 오 시장을 비롯한 실국장들의 얼굴은 피로 탓인지 점차 창백해졌다. 반면 더 많은 시민이 발언권을 요청하며 토론회 분위기는 점차 뜨겁게 달궈졌다.
특히 '관광숙박 시설 용적률 완화', '임대주택법상 기부채납 비율 완화', '골목 부동산 한시적 용적률 상향' 등 부동산 제도 관련 건의가 쏟아졌다.
전문 분야 제안이 나오자 행사장 뒷편 테이블 자리를 지키던 실국장들이 설명에 나섰다.
조남준 도시공간본부장은 "골목에 대한 한시적 용적률 완화는 3년 정도 할 경우 공동주택뿐만 아니라 단독주택 등의 서민 주택에 대해서도 공급이 돼서 서민 주거 안정에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조례 개정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오 시장은 이날 맺음말에서 "오늘 참석한 시민 분들은 본인들의 사정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결국 동종업계나 비슷한 처지의 시민들을 대표해 오신 것"이라며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주셔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4월 10일까지 100일간 온라인에서 규제 개선 의견을 받는다. 3일부터 8일까지 시행한 사전 아이디어 공모에서는 '일상 속 황당 규제' 67건, '건설·주택·도시계획 규제' 56건 등 111건의 규제철폐 제안과 86건의 신규 정책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시는 앞으로도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국 단위의 조직을 신설해 규제 개혁 사안을 발굴해나갈 계획이다.
alicemunro@news1.kr